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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Sep 27. 2015

가을소풍

김밥 그리고 코스모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야외 모임을 갈 예정이다. 이름하여 “가을소풍”

내 고향은 경주에 있는 ‘안강’이다. 편할 ‘안’에 편할 ‘강’. 편하고 편한 곳. 그래서 신라 42대 흥덕왕은 이곳에 묻혔을까?

흥덕왕. 신라 어떤 왕보다 친숙한 왕이다. 내 어린 시절 소풍 장소로는 워낙 자주 들러서 일 것이다. 그도 왕에 오를 때까지 온갖 정치에 정점에 있었고, 재위 시절(826~836년)에는 ‘장보고’란 이름을 세상에 날리게 했으며, 가뭄과 큰비로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되, 왕비가 먼저 죽자 “외짝 새도 제 짝을 잃은 슬픔이 가득하거늘, 내 어찌 무정하게 금방 다시 장가를 다시 든단 말인가?” 라는 말을 했단다. 이제는 ‘안강’에서 영원히 평안하겠지.

가을소풍. 가슴 설레는 단어이다. 소풍 전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이 나 뿐이었을까? 저녁 해질녘부터 밤이 깊도록 몇 번이나 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며 내일 날씨가 좋기를 간절히 바랬다. 종교도 없었건만, 부처님 예수님 달님께 빌고 빌었다.

김밥. 소풍 하면 김밥이 먼저 떠 오른다. 김밥은 1년에 몇 번 밖에 먹을 수 있던 시절. 단무지는 노란색이어야 한다. 무색의 단무지는 제 맛이 아니다. 내 어머니는 빛 바랜 노란 알미늄의 평소 가지고 다니는 도시락에 김밥을 담아 주셨다. 점심때 먹을 때쯤 흔들려 속으로 배어든 맛을 더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추억의 도시락이 아련하다.

간밤에 기도가 통했는지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하다. 노란 단무지로 맛을 낸 김밥과 사이다를 소풍가방에 담아 매는 순간.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 친구를 만나 10리길을 걸어 갈 때, 개울의 물들도 여름의 힘겨움을 감추고 같이 장단을 맞추었다. 한여름, 폭염 이어진 가뭄 그리고 태풍의 홍수로 온갖 인간의 힘겨움과 인내를 시험하더니, 이젠 졸졸 맑은 소리를 내며 푸른 하늘에 장단을 맞추어 준다. 봄 개울은 개나리 진달래 보다 빨리 얼음 녹는 소리에 봄을 실어 왔고, 여름 개울은 휘모리 장단의 힘참과 농부의 타는 목마름으로 왔으되, 가을 개울은 아름차고도 풍성하며 짭짤한 햇살로 왔다.

코스모스. 줄지어 소풍 가는 길가에 늘어선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로 헬리콥터 만들어 날리던 운익이는 최근 연락이 닿았다. 여전히 좋은 넉살에 넉넉한 목소리가 좋다. 코스모스가 예쁘다며 머리에 꽂던 같은 마을 살던 영희. 영희는 4학년에 왜 이사를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이 가을 하늘 아래 어디선가 코스모스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겠지.

장기자랑. 보물찾기. 기념사진. 잊지 못할 내 유년의 소풍에 대한 기억이 아름다워 가슴 설레는 9월이다.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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