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관심이 죄다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하나뿐인 딸이 대학을 가고 사이가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고3을 거치며 딸의 미래를 걱정하여 관심을 가졌던 게 화근으로 감정의 다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친구도 고3을 거치며 첫째 아들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재수하며 사이가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의 외동아들은 이제야 아빠와 엄마의 사랑 차지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아빠 엄마가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둘째다. 4살 차의 형이 있다. 형 덕분에 둘째인 나는 보다 자유롭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형에게 감사하다. 내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처럼 첫째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그런 기대가 내내 부담이었던 형은 아버지와 반목했다. 그 반목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골은 깊어갔다. 지금은 관계가 회복되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상봉한다. 그러나 갈라져 보수한 시멘트 같다.
자식과의 관계. 애증의 관계인 듯하다. 잘 되라고 관심을 가지지만 그 관심은 간섭이 되고 다툼이 되어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둘째는 복이다. 처음 하는 부모 노릇을 첫째를 통해 배우고, 그 틈으로 둘째는 상대적으로 감정이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다. 대게 첫째 자식 농사는 둘째의 수확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둘째가 사라졌다. 내 많은 친구들은 둘째가 없다. 나라의 지나친 관심도 한몫을 했다. 이제야 나라와 사회가 둘째와 셋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인구증가 때문만이 아니라 이 땅의 외로운 외동아들 딸들을 위해서 이다. 첫째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혼자 감당하던 관심의 부담을 들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서로 무죄다. 모두 무죄다. 다만 죄는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그 죄일 것이다.
관심과 사랑도 결국 적당해야 한다. 뭐던 지나치면 안 좋다. 적당한 관심과 사랑, 그 틈으로 감정이 자유롭게 피어 날 것이다. 감정이 자유로우면 이성은 스스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자유로운 가운데 쌓아 올린 이성이어야 사고를 치지 않는다. 감정을 억압받고 공부만 한 엘리트는 그 감정을 돈으로 권력으로 보상받고자 오늘도 뉴스 속에 저리 난리다. 자유로운 감정을 줄 수 있는 그들의 부모는 이미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자유로운 이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짜다. 진짜는 감정을 받아주는 보모가 키운다. 그래야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