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6월 24일. 금요일. 비가 왔다. 가끔 비가 오면 혼자 근처 극장을 찾는다. 30년 된 것 같다. 그리고 상영 시간대가 맞는 영화를 무조건 본다.
‘싱스트리트’. 상영 시작 전. 누군가 나와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면 영화가 끝나고 남으라고 했다. 바쁜 일, 없다. 큐레이터. 이런 직업도 있구나. 영화 상영 후, 큐레이터의 설명은 비 오는 금요일을 행복하게 했다. 설명도 좋았지만 그 많은 내용을 귀에 속속 들어오게 숨도 쉬지 않고 말하다니. 놀라운 능력이다.
매주 금요일 한단다. 금요일 오후 우연히 찾은 극장, 내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
7월 1일. 금요일. 비가 왔다. 호우였다. CGV 오리를 다시 찾았다. 큐레이터가 있는 영화 시간은 저녁 시간 대여서 아쉽게 다른 영화를 보았다. ‘500일의 썸머’ 누구나 겪는 삶과 사랑의 여름날 기억. 그녀는 이 영화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7월 8일. 금요일. 장마 끝물. CGV 오리를 또 찾았다. 이번에 큐레이터 영화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왔다. ‘서프로제트’. 20세기 초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에 대한 이야기. 영국에서도 여성 투표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1948년 미국에 의해 그냥 주어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그냥 주어지면 안 되는 그런 소중한 가치를 소화해 내기 위해 우리는 그 값을 치러 왔고 아직도 그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후불제 민주주의.
12월 23일 금요일. 눈이 왔다. 서울에 있는 강의 시작은 7시. 이크. 강의를 조금 늦기로 했다. 그녀를 볼 수 있을 날이 오늘뿐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 말에 따르면 “나는 해고되지만 사용자는 계약해지라고 하네요” 그녀는 이곳에서 이달 말까지만 근무한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실직한 주인공의 얘기가 그녀의 상황과 겹친다.
나오며 그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말을 건넸다. “그동안 설명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선물을 주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과 함께. 나지현. CGV 오리 큐레이터. <전. 지현>은 예쁘지만, <나. 지현>은 예쁘고 당당했다. 그녀는 계속 당당하게 살 것이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