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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an 16. 2020

10년전 단골 미용실

오래오래 번창하세요

10년 만에 예전 단골 미용실에 다시 가보았다.

한동안 내 헤어스타일을 전담했던 곳.


너무 오랜만이라 전화부터 걸어보았다. 혹시 없어졌으면 어쩌나. 2-3번 신호 후 상호안내 기계음이 나왔는데 익숙한 미용실 이름이 나왔다. 잠시 후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예약시간을 잡았다.


미용실은 예전에 살던 아파트 상가건물 2층에 있었다. 20평 남짓 될까. 미용 의자 3개뿐인 곳에 손님들인 끊임없이 들락거렸다. 사장이자 유일한 헤어디자이너인 그는 동네에서 솜씨 좋은 미용사로 꽤 유명했다. 보조직원이 있어도 미용사는 한명이라 혼자 동분서주 바쁠 수밖에 없었다. 주말 오후에 가면 대기 시간이 어마어마했었다. 대기자가 늘어나면 예약도 받지 않았다. 예약 없이 오는 손님들도 많았기때문에 예약시간이 별 의미가 없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많으면 서두를 만도 한데 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손님 한 명에게 할당한 시간을 정해놓은 것처럼 완벽한 스타일을 만들어낼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 어떤 시술을 하든 곧장 예식장 하객으로 가도 손색없을 만큼 공들여 손질해주었다. 손님들은 대기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기꺼이 기다렸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사장이 비니 벗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비니를 벗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혹시 대머리인가? 180cm 키에 건장한 체구인 사장에게 코미디 분장에서 보는 주변머리만 있는 가발을 씌워보는 상상을 나 혼자 하곤 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사장은 한결같이 정성스럽게 가위를 능숙하게 날리며 스타일을 잡아간다. 마구잡이로 자르지 않고 끊임없이 설명한다.

‘길이는 적당하죠? 이렇게 해야 다음 손질 때까지 편하거든요. 옆머리는 살짝 볼륨감 있게 손질할게요. 얼굴선이 살아 보일 수 있게요. 앞머리는 조금만 층을 더 내볼게요. 뒷머리는요....’




사장님은 변했을까.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 시간에 맞춰 2층으로 올라갔다. 문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것도 똑같았다.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비니를 쓰고 있었다. 무채색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모습까지 예전 그대로였다.

사장은 나를 보고 놀랐듯 했고, 나또한 전혀 변하지 않는 사장 때문에 놀랐다. 1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사장님, 그대로 계셔서 다행이에요.’

‘절대 다른데 안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혼자 생각했다.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트부터 들어갔다. 긴 상담 이후 사장은 가위를 열심히 놀리며 예쁘게 머리를 다듬어 갔다.

샴푸 후 헤어클리닉에 들어갔다.

예전에 사장은 내가 파마를 하는걸 극구 말리곤 했다. 머릿결이 상한다는 이유였다.

‘손님은 파마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스타일링 가능해요. 제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바쁜 와중에 고대기를 움직이는 방법, 열 조절 요령 등을 침을 튀어가며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나라면 그냥 파마해주고 말 것 같은데.

가끔씩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충동이 강렬해질 때면 슬쩍 다른 미장원으로 외도를 가기도 했었다. 머리를 하는 내내 그 사장의 목소리가 쟁쟁거리는 듯 했었다.


라벤더 향의 헤어제품을 골고루 바른 후 사장은 양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탁탁 두드렸다. 한참을 치대고 나서 샴푸실로 가라고 했다. 자리에 눕자 쏴아 물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감기면서 사장은 두피마사지를 꼼꼼하게 해주었다. 거북목 때문에 뒷 목네 항상 뻐근한 통증이 있는데 꾹꾹 눌러주니 정말 시원했다. 샴푸를 끝내고 자리로 돌와 마무리 스타일링에 들어간다.


사장의 솜씨는 여전했다. 서비스가 달라졌을까봐 상짝 걱정했으나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타일을 잡아가며 머리를 말린 후 고대기를 들고왔다.예전에 하던대로 스타일링 비법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내가 미용학원 학생이라도 된 듯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최대한 쉽게 손질하는 방법을 보여드릴게요. 혼자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앞머리를 잡고 고대기를 직선으로 천천히 절반까지 내려오세요. 아래쪽 반은 뒤로 넘기면서 살짝 구부리면 됩니다. 반대쪽머리는 좀 힘들어요. 오른손잡이는 방향이 반대라 손이 꼬이고 난리가 나죠.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마세요. 그냥 한번 지나간다 정도로만 하세요. 어때요 쉽죠?’


사장이 하는 걸 보면 쉬워보이는데 과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지만 나는 모범생처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뒷거울을 몇 번씩 보여주며 뒷머리 손질법까지 배운 후에야 마무리가 되었다. 어느새 3시간이나 흘러있었다.


예전에 사장의 중학생 아들이 아빠 옆에서 일을 거들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 맞아요. 아주 잠깐 일했죠. 저도 잊고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시네요. 그때는 일 못한다고 혼만 냈었는데. 일당이라도 후하게 줄걸 그랬죠, 하하.

군대 갔어요. 곧 제대합니다.’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클리닉 값만 받을게요. 커트는 서비스에요!’

‘예? 말도 안돼요. 받을 건 받으셔야죠.’

사장은 내가 말하는  도중에 어느새 다른 손님 쪽으로 가버렸다.

나는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한번 더 말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이런 가게를 알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맘이 내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고 기다려준 것 같은 느낌.

사장은 장사를 하면서 돈만 벌고 있었던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에게 예쁜 헤어스타일을 해주면서 따뜻한 기억을 쌓아주고 있었구나.

그런 시간이 사장님에게도 소중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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