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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an 04. 2020

2020년 1월 1일 해돋이

부산 해파랑길을 걷다

일출 예상 시간 7:34

아직 30분도 더 남았다. 인터넷에서 해운대날씨를 검색해보니 영하 3도였다. 하지만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점점 손끝이 아려왔다. 

어둑한 하늘 주위로 따뜻한 온기처럼 노란 빛이 퍼지는 모습이 굉장했다. 눈으로만 보기 아까워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렇지만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는 저 황홀한 색감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사진보다 내 기억 속에 담아가는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파도소리, 주위의 웅성거림, 비릿한 바닷가 공기까지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벌써 서너겹의 사람들이 모래사장 앞 쪽에 들어서 있었다. 해돋이 행사가 있는지 바닷가 왼편에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고 주위에 조명이 번쩍거렸다. 사방이 아직 어두워서인지 조명이 유독 요란스럽게 보였다. 무대 위에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맨다리를 드러낸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해를 기다리며 삼사십분을 서있었다. 새해 첫해를 기다리는 설레임 때문일까. 점점 농도가 짙해지면서 붉은 기운이 바다와 접한 하늘위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루할틈도 없었다. 예정된 일출시간이 가까워오자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언뜻 주위를 둘러보니 모래사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꽉 찬듯했다. 사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인파로 시야가 가려서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일출까지 5분쯤 남았을까. 기다리던 사람들은 조바심에 한마디씩 던졌다. 구름 때문에 못보는거 아니야? 저 동상이 없었으면 더 좋겠네. 거 앞줄에 카메라 좀 치웁시다. 일출시간이 가까워 오자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노란색에서 연한 주홍빛으로, 다시 홍시의 속살처럼 진한 다홍색으로, 다시 더 붉은 색으로 점차 하늘색이 바뀌었다. 구름이 살짝 있었지만 선명한 태양을 못 볼 정도로 아닐 것 같았다. 


31분쯤이었다. 누군가 무대의 커튼을 걷어올린 것처럼 태양 위부분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와하고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바다와 하늘이 접하는 곳이 동백꽃보다 더 붉게 변했고 압도적인 강렬한 노란빛을 발산하면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은 위엄있게 서두르지않고 천천히 떠올랐다.

갑자기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뭐지. 해를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기분은. 

특별히 내 인생의 슬픔 일이나 기뻤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2020년 첫해를 보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물이라니. 


나는 지금껏 한번도 새해 첫날 일출을 본적이 없었다. 부지런한 사람들만 누리는 호사겠거니 생각을 했다. 

2020년 1월 1일에 떠오르는 해를 바닷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인파와 함께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그런지 감동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2020년을 그려보았다. 나는 나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감각을 깨우는 사람이 되라고, 감동할 줄 알고 그 감동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라고. 글쓰는 사람이 되라고 기도했다. 1년이 지날 무렵 이 순간을 떠올려볼 나를 생각했다.


해가 다 드러내기까지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뒤를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입구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기동력이었다. 순식간에 해운대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흩어져지는 모습이 놀라왔다. 

해 뜨는 순간을 보느라 잠시 잊었던 추위가 몰려왔다. 손끝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얼른 장갑을 꼈다.

조식을 판다는 동백섬인근 식당으로 걷기 시작한다. 바닷가를 따라 조선호텔 방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도심안쪽으로 빠져나가는 인파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주차장의 차들도 빠져나가느라 바빴다. 사람과 자동차가 뒤엉켜 해운데 일대가 아수라장 같았다.


식당에 도착하여 2층에 올라선 순간 잘못왔나하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은 깨끗히 포기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따뜻한 라테한잔을 주문했다. 그것도 한참을 기다려서 받을 수 있었다.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바로 옆 동백섬입구로 들어선다. 바닷가를 끼고 완만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천천히 걸었다. 아까 보았던 붉디 붉은 태양은 어느새 하늘 높이 떠올라 하얀 빛을 맹렬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언제 추었냐는 듯 따뜻한 열기를 전해주었다. 


걸으면서 문득 엄마생각이 났다. 나는 엄마에게 새해 복많이 받으시라는 문자를 넣었다. 내 걱정도 그만하라고 덧붙였다. 곧장 답장이 왔다. 아침 일찍 딸에게서 온 문자에 기뻐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동백섬 주위를 천천히 구경하듯 한 바퀴 돌고 나니 한시간쯤 지나있었다. 아까 그 식당에 아직도 사람이 많을지 궁금했다. 다시 가보니 식당입구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1시간 만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배를 채웠겠구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종원업에게 물었다.


‘아침식사 될까요?’ 

‘됩니다. 앉으세요’ 

왠일이야. 기대감이 전혀없었는데 뜨끈한 떡국을 먹을 수 있다니.

얼른 떡국 주세요!


잠시후 종업원이 밑반찬을 가져왔다. 제일먼저 내려놓는 것은 노른자색이 선명한 반숙 계란 후라이. 정말 깜찍하고 센스있는 메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콤달콤 소스를 엊은 브로콜리도 내주었는데 나는 소스가 묻지 않은 프로콜리 한 조각을 집어 노른자를 콕 찍어서 먹었다.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등장. 아 설레어라. 못먹을뻔한 너를 드디어 만나는 구나. 맛있게 먹어줄게. 나는 얼른 숟가락을 집어들어 김가루와 파 등의 고명을 국물에 풀었다. 새벽 댓바람을 맞으며 해운대 일출을 감상하고 동백섬까지 걷고 난 후 사골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떡은 또 얼마나 찰지고 씹는 맛이 좋던지. 국물맛이 진하고 고소했다. 간이 조금 세다는 것만 빼면 만족스런 아침식사였다.  못먹을뻔한 떡국을 먹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출 못지않은 감동이었다. 



부산여행 이틀차 해파랑1길을 걷기로 했다.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이기대공원을 완주한 후 광안리해수욕장을 거쳐 해운대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해질 무렵에 해안선 풍경이 기가막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꼭 걸어보고 싶었다.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오륙도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날은 맑았고 바닷물이 햇볕에 반사되어 푸른빛이 더욱 투명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해파랑1길이 시작된다. 

이기대공원을 걷던 도중 해가 지면서 산책로가 너무 어두워 겁도 났지만 친구가 함께 있어서 걸을만했다. 과연 해파랑길의 풍경은 일품이었다. 걷는 내내 눈앞에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고 해가 저물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도심의 야경까지 보태졌다. 해가 있을 때 출발해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공원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다시 광안리까지 계속 걸었다.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 걸어서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 최종목표였지만 날이 너무 차고 지쳐서 광안리해수욕장까지만 걷기로 결정했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아침 산책길과 해파랑길을 포함하여 17km를 걸었다. 부산에 온 이유가 걷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번 여행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것 같아 뿌듯했다. 올해는 왠지 많이 걷는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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