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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Dec 28. 2019

겨울 산행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흔들바위까지 길이 이랬었나? 그나저나 벌써 도착이라고? 나같은 저질 체력이 갑자기 원더우먼이 될리도 없는데 희한한 일이군.

지금까지 흔들바위까지 열 번도 넘게 올라왔을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스스로 둔감한 편이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 관찰력이나 기억력이 그렇지 뭐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아스팔트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면서 큰 바위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한걸음 간격으로 바위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건 분명 지난번에 못 봤던 거야. 도대체 용도가 뭘까. 벤치 대신 앉아서 쉬라는 건가. 앉기에는 울퉁불퉁해 보이기도하고.


평탄한 흙길이 끝나고 가파른 바위계단길이 시작되었다. 슬슬 땀이 나네. 나는 잠시 앉아서 물을 마시며 쉬고 싶었지만 벤치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보자. 나는 계속 올라갔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다 오른 후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흔들바위가 바로 코 앞에서 보였다.

어라? 어느새 도착해버렸네. 예전에 한 40-50분은 걸렸던 것 같은데 30분도 채 안되어 다 왔다는게 신기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가끔 까마귀 울음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휴대폰 카메라 소리가 꽤나 요란하게 들렸다. 암자 주변이라 그런지 더욱 정막하게 느껴졌다. 법당 앞 약수터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조금 떨어진 곳의 계곡 물소리도 섞여들었다.


겨울치고는 날이 따뜻해서 올라오는 길 중간에 파카를 벗었으나 땀이 식으면서 파카를 다시 입고 장갑도 꼈다. 이제 슬슬 내려가볼까 짐을 정리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주머니 한 명이 삼사 미터쯤 떨어진 곳에 막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건냈다.

절에 자주 올라오신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궁금하던 걸 물어보았다. 길가에 바위들은 대체 왜 있는건지.


얼마 전까지 여기 공사하느라 난리였어요. 공원 출입도 막혀있었고요.
전에는 이 길이 전부 철계단이었잖아.
올라오기 얼마나 힘들었어.
길을 새로 닦고나니 걷기 좋고 시간도 빨라지고.


그랬구나. 내가 갑자기 등산을 잘하게 된 게 아니었어. 아무 생각없이 걸었던 이 길이 누군가의 수고로 만들어진거구나. 역시 나는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사람이 맞았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도 돌의 쓰임새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아빠를 따라왔을 때부터 가장 최근에는 2년전에도 흔들바위까지 온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큰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어째서 내 기억 속에 이곳은 흐릿하고 불분명한 흔적으로만 남았을까.

‘종이동물원’을 쓴 SF 소설가 켄 리우는 기억이란 스케치와 같다고 말했다. 기억은 사진과는 다른 것이라고. 원본보다 더 많고 또 적기 때문에 값진 것이라고.


A sketch, not a photograph. A memory is a re-creation, precious because it is both more and less than the original.



내가 지금 본 것을 시간이 흐른 후에 기억한다면 실제 설악산의 모습이라기 보다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친 다른 무엇일 것이다. 원래 이 길에 있던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잊혀질 것이고 없던 무엇이 덧붙여지기도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시간과 더불어 변형되고 재창조된다. 부끄럽지만 설악산에 대한 나의 기억은 더 값지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덜어내다 못해 너무 초라하게 쪼그라들어버린 기억.


나는 이번 등반에서만큼은 오감을 동원하여 꼼꼼히 감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들바위 주변을 풍경들, 법당 안과 밖, 고개를 들어 울산 바위까지. 주변 풍경을 조용히 감상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 평평한 바위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쌓이는게 싫고 두려운게 솔직한 나의 심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20-30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내가 더 맘에 든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더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보고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같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머지는 다 눈을 감아버리는 무감한 인간.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나도 공감받을 자격이 생길텐데 그저 받기만 원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등산로가 끝날 즈음 반대편에 아주머니 한 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 왔을 즈음 쓰레기 봉투와 긴 집게를 들고있는것이 보였다. 올라가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이구나 생각하던 차에 서로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를 나눴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이었지만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나이들면서 내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 중에 한 가지는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얘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있다. 예전에 낯을 많이 가리던 나로서는 꿈도 못꾸던 일이다.


슬슬 배가 고팠다. 공원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산채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서너 명의 종업원들이 모여서 조근조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눈이 올 것 같네. 사방이 조용해.


생각해보니 눈 오기전은 비올 때와는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설악산 국립공원 주변의 공기는 바람도 없이 고요하게 눈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나가기 직전에 대청봉 실시간 현황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었다. CCTV가 보내주는 영상에서 산꼭대기 메마른 나무가지들이 소리없이 흔들리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벌써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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