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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an 06. 2021

가상 여행기 4

연재소설-네번째 이야기

제피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이유는 소설에 들어갈 장면 묘사를 위해서였다. SNS로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심리를 상상으로만 쓰기가 어려웠다. 만들어놓은 페이스북 계정으로 간간히 글을 올리거나 지인들의 신혼집, 첫아이 사진들을 가끔 구경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계정이 생겼다. 몇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한 잡지출판사의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출판사 부스의 전시물을 개인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해시테그를 달아주면 과월호 잡지를 선물로 준다고 했다. 제피는 부스 옆에서 서서 회원가입부터 시작했다. 아이디는 역시 제피가 좋겠지. #해외전문잡지#여행#패션#와인#호텔 등 20개가 넘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첫 번째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전시장을 한바퀴 둘러본 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더니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하트가 달려있었다.  하트를 눌러준 5개의 계정을 모두 방문해보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그들의 일상은 왠지 모르게 세련되고 여유로워 보였다. 늘 보던 풍경들도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보면 더욱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제피는 여행 사진을 올리는 계정들을 모두 팔로잉했다. 관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피로서는 너무나 훌륭한 대체 여행 수단이 생긴 것 같았다.


소셜미디어 안에서만큼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누구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는 작가지망생이 아니라, 촌철살인 문장으로 예리하게 현상을 꿰뚫는 철학자가 되었다. 벤야민이나 존 버거의 책에서 읽은 문장을 조금만 바꿔서 자신의 글인 냥 블로그에 올리면 금세 하트가 쌓였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무엇보다 행복했다. 아무리 습작을 해도 늘지 않는 자신의 소설과 달리 SNS에 쓴 짧은 문장들과 업로드된 사진들은 감춰진 자신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잘난 놈이었구나.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록 더 행복해졌다. 전혀 다른 삶이 새롭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SNS에서 친구들과 여행얘기를 할 때만큼은 제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냈다. 어두침침한 아파트에서 늘어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는 백수가 아니라 감각적 문장으로 무장한 여행 작가처럼 술술 말했다. 어느 순간 가보지 못한 어떤 도시에 대해서 마치 익숙한 곳이라는 듯 아는 척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두 번째 챕터 – 오지 여행의 묘미

오지 여행의 묘미는 역시 혐오음식을 먹어보는데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혐오‘라는 단어를 썼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아주 흔한 일상식이다. 벌레, 곤충은 우리가 소, 돼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식자재인 것이다. 우리도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메뚜기나 개구리를 간식으로 튀겨먹지 않았던가.

아마존닷컴 설립자인 세계 최고의 갑부, 제프 베조스가 익스플로러 저녁만찬에서 바퀴벌레 요리를 먹어서 충격을 선사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갑부의 기상천외한 식습관이라며 트위터에서 빠르게 퍼졌고 뱀파이어같다거나 최소한 익히긴 했겠지 등등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정작 바퀴벌레를 먹는 베조스의 표정은 마치 버터에 구운 아스파가거스를 먹듯 평온하고 느긋해 보였다. 물론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벌린 해프닝이었지만 혐오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벌레는 아마존의 원주민들의  주식이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익숙한 관광객이 그런 음식에 도전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형태를 알 수 없게 으깨거나 잘게 다졌다면 그나마 도전이 용이하겠으나 방금 살아 움직이던 모습 그대로 식탁에 올라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솔직히 구역질이 올라왔으나 용기를 내어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혓바닥에서 느껴지는 기름진 풍미를 감상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용기를 내어 어금니로 가운데 부분을 꽉 깨물었다. 육즙이 쭉 입 안으로 빠져나왔다. 고소하고 진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최여사는 아들이 최여사 몰래 막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제피의 눈에 최여사는 부끄러움으로부터 초연한 사람 같았다. 아들의 형편에 대해서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든 달관한 사람같아 보였다.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를 할 때 제피의 근황을 묻지 않았다.

최여사는 제피에게 공장 일을 도와달라는 말을 가끔 했다. 제피는 점점 최여사의 공장에 나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기분이 묘했다. 평소 최여사를 존경했고 격의 없이 지냈지만 이상하게 일터에서 마주하는 최여사는 달랐다. 제피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공장에서 최여사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공장에 들어설 때마다 웅크린 자세로 재봉틀을 돌리는 직원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얼른 최여사 사무실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어쩌면 최여사는 제피가 독립하는 걸 바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고 제피는 생각했다.


몸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돈은커녕 몸만 상해서 며칠 앓아누웠을 때 휴대폰에 입금 알림 카톡이 떴다. 최여사였다. 다 알고 있었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했던 걸까. 제피는 입금액수를 확인하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보증금으로는 부족했지만 꽤 큰 돈이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불쑥 입금된 돈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이불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빨래나 할까,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릴 때 최여사는 제피에게 말하곤 했다.

한번 도전해봐. 해보고 나서 아니면 그때 그만 둬도 늦지 않아.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보여도 일단은 도전해봐.


최여사한테는 맞는 말이었다. 재봉틀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을 이만큼 키워낸 최여사니까. 밑천도 없이 건강한 몸과, 과감한 투자정신, 봉제업의 호황이라는 약간의 운을 등에 없고 최여사는 미싱사에서 봉제공장의 사장이 되었다. 남편을 일찍 잃었지만 혼자 힘으로 제피를 이만큼 키워냈으니까. 엄마는 늘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했지.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잖아.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제피는 습작기간이 10년 넘어가도록 등단은 하지 못했다. 무수한 공모전과 수차례의 신춘문예에서 낙방할 때마다 최여사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곤했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꿈을 좇으며 살 것인가.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꺽여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점점 더 많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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