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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Mar 12. 2020

People Character 2 - 부끄러움의 뒷모습

부끄러움은 또 다른 언어이다.

내가 G를 만난 건 휘슬러 여행 가는 버스에서였다
내가 가입한 온라인 카페에서 휘슬러 여행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가게 된 여행이었다
멤버들 대부분이 엄마와 아이들이어서 혼자 온 G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냥 한번 해봤는데, 정말 당첨될 줄은 몰랐다며 말 끝도 다 채우지 못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떨어뜨리며 수줍게 웃었다

가을 휘슬러는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면 가는 곳마다 작품이 되는 곳이다
수없이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여기저기 작품을 만들었던 기억 안에 그가 지나치는 사람으로 거기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내 기억 속에서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피아노 때문이었다
그가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 그가 연주한 음악 동영상을 올렸고, 마침 딸아이의 피아노 선생님을 찾고 있던 나는 그에게 딸아이 피아노를 가르쳐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취미로 연주하는 것이라 누굴 가르쳐본 적은 없지만 원한다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후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딸아이를 가르치러 왔고 언제나 말을 할 때면 부끄러워 한 문장을 끝까지 다 채우지 못하고 그냥 웃음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손가락 사이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은 곡을 갖고 싶어 했다
그는 그런 아이의 요구를 아주 천천히 들어주었다
본인이 치고 싶어 취미로 피아노 연주를 해서인지 그는 아이에게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나도 피아노가 아이 인생에 친구처럼 함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가 아이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방법이 싫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피아노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며 시간이 되면 오라고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아이도 선생님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해서 우린 저녁이 아직 땅에 닿을락 말락 하는 시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객석과 무대가 나누어지지 않은 작은 공간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한쪽 어깨로 땅을 가리키며.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이.
소리가 춤으로 노래로 바뀌는 순간의 눈부심이 숨을 멎게 해서 자꾸 한숨 아닌 한숨이 나온다
한숨은 감동에 대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내 안의 대답이다

그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은 자신이 무대를 만들어 그 가운데 서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말도 못 하면서 피아노 칠 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걸까?
그를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 것은 그동안의 내 삶이 만든 틀이었다
그는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평소에 에너지를 비축해 두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피아노만 치는데 다른 악기 소리가 들린다
기타 소리도 들리고 가끔 징소리도 들린다
연주하면서 악보를 넘기는데 그 찰나에 악보에서 바람이 분다
그 소리로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사회도 보고,

악보 넘기며 연주도 하고,

설명도 하고.
난 부끄러움이란 말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단어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유난히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시작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딸아이도 오늘 여기 오기 잘했다며 선생님의 연주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난 오늘 그의 뒷모습만 보았다
그리고 그는 뒷모습으로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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