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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Apr 29.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강화길 <음복>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집안의 악역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강화길의 「음복(飮福)」은 어느 하루 제삿날의 이야기를 그린다. 화자는 결혼 후 시댁을 들러 남편의 가족들을 만난다. 그러나 화자에게 있어 남편의 고모는 불편한 존재로 다가온다. 남편은 자신의 고모를 두고 '진중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라고 설명했지만, 화자가 바라본 고모는 다르다.


 "장례식장에서 다른 가족들이 일하는 동안 본인 앞으로 들어온 조의금을 세어보는 사람. 식구들이 모이면 사정 뻔히 알면서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이고 취직은 언제 할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모가 그 집의 악역'이라고.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날카롭고 무례한 사람이기에 화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원망의 화살은 남편에게로 향한다.


 남편은 그동안 이러한 정보를 자신에게 말해준 적 없다. 결혼 전, 자신은 집안의 모든 사정들에 대해 다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거야?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어?"


 하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건 일부러 짓는 표정이 아니다. 그는 고모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리고 화자는 곧 그 이유를 알게된다.


 살면서 제사상에 신경써본 적 없는 사람. 남편의 부모는 그를 그렇게 키웠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뒤치다꺼리와 관련해서는 무지하도록. 그것이 집안에서 남편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다. 제사라는 가부장적 문화는 그렇게 이어진다.


 그 무지한 얼굴, 즉 '모든 그늘이 사라진 얼굴'은 곧 화자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근심 걱정을 떠안고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의 모습에 반했다.


 오은교 평론가는 소설에 대해 "남편을 향한 '나'의 사랑은 권력에의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남편쪽에 기대 서는 것은 단순한 로맨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인 화자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그 무지한 얼굴을 가져본 적 없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여성은 늘 개입된 존재여야 했고, 남성은 배제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의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은 화자가 그토록 바라던 것과도 같다.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이 가지고 있는 권력, 그 자체다.


 그렇다면 고모는 어떤가? 처음 고모를 불편하게 느꼈던 화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를 향한 가시를 내리게 된다. 그는 자신의 엄마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치매인 어머니를 앞장서 돌보아야 하고, 제사가 있는 날이면 뒤치다꺼리를 해야하고, 치매인 어머니를 누구보다 앞장서 돌보아야하는 사람이다. 고모 역시 가부장제 아래 살아간 일종의 피해자와 다름 없다.


 고모가 화자의 남편을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안의 모든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고민들에서 당당하게 벗어난 남편. 남은 것들은 집안의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화자의 어머니와, 남편의 고모는 그렇게 자랐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는 길에 화자는 다짐한다. 자신의 딸 만큼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다음 세대에서는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 권력이 여성에게도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어둠 속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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