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떤 좀비보다 빠르고 강력하다. 배고픔에 굶주린 백성들의 영혼이 다시 살아난 모습이다. 부잣집 양반들이 권력을 무기삼아 사리사욕을 채울 때, 백성들은 배고픔에 못이겨 인육을 먹고만다. 이는 참담하고 잔혹한 결과로 이어진다. 좀비의 탄생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좀비들이 나타난 조선을 배경으로 그린다. 왕세자 이창(주지훈 분)은 아버지의 병명을 숨기려는 조씨 일가에 의심을 품는다. 이창은 궁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직접 아버지의 침실에 잠입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뜻밖의 존재와 마주친다. 악취를 풍기고, 짐승의 소리를 내는 존재.
왕세자 이창이 마주한 조선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창은 왕권을 노리는 조씨 일가와 맞서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떠난다. 어릴 적,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 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늘 두려워하고 겁에 질려있던 이창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비밀을 밝히려는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킹덤'은 이창의 성장과정 역시 함께 그려진다.
그러나 한평생 궁궐 안에서 지낸 이창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좀비가 들이닥치는 재난 앞에서 그는 단 한 명의 백성도 두고 가려 하지 않는다. 이는 조씨 일가와 다르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려는 이창의 욕망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킹덤' 스틸컷
또한 이창의 곁에는 그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는 이가 있다. 바로 서비(배두나 분)이다. 지율헌 의녀인 서비는 스승이 남기고 간 일지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이 생사초와 연결된 것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의녀로서 이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앞장선다.
이 과정에서 서비는 기존의 남성 중심 작품 속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는 남성 캐릭터 옆에서 민폐를 끼치거나 위험 상황 때 마다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는 찌질하고 겁 많은 조범팔(전석호 분)을 옆에 달고 다니며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직접 좀비들의 목에 칼을 꽂기도 한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은 '킹덤'을 '배고픔'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김은희 작가는 "기득권층의 부당한 대우로 배고프고 헐벗은 시대를 살게 된 이들을 괴물의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살을 뜯어먹어야만 살 수 있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죽어도 죽지 않은 채 성곽을 뚫고 조선을 덮친다. 핏빛으로 물든 조선의 한 가운데,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