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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Apr 29. 2020

영화 <소공녀>, 취향입니다 존중하시죠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영화 '소공녀' 스틸컷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소녀의 인생은 오직 세 가지로 완성된다.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 이것만 있다면 집도 포기할 수 있다. 정말이지 헛된 이상일 뿐일까?


 영화 '소공녀'의 미소(이솜 분)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그러나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집값까지 오르면서 그는 생계에 위협을 느낀다. 결국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매일을 보낸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자꾸만 오르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마주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 시절, 한때 함께 밴드 생활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미소의 친구들이 바로 그러하다.


 대기업에서 버티기 위해 점심 시간을 짬내 포도당을 맞는 문영(강진아 분), 결혼 후 집안일만 하다 키보드따윈 잊고 살게된 현정(김국희 분), 빚을 내서 신혼집을 마련했지만 아내와 헤어지게 된 대용(이성욱 분), 나이가 들자 부모의 소원에 떠밀려 결혼을 갈망하게 된 록이(최덕문 분), 한때 밴드에서 기타를 쳤으나 지금은 돈 많은 남편과 결혼해 눈치만 보고 사는 정미(김재화 분).


 미소는 그들과 함께 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오래된 상자 안에서 발견한 사진 속 미소와 친구들은 술잔을 들고 담배를 피우며 환하게 웃고 있다.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던 그들은 한때 행복했고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위해 가고 있다. 미소 역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담배 한 모금과 위스키 한 잔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미소가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취향이자 품위. 그것이 미소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미소의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이다. 가진 것 없어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미소지만, 한솔의 생각은 다르다. 조금 더 돈을 벌어서 집을 구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미소는 동의할 수 없다. 2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는 것을 택한 한솔과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으면 모든 게 괜찮은 미소의 가치관은 이렇게 벌어진다.


 누군가는 미소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누군가에게는 집, 누군가에게는 애인, 누군가에게는 돈이 그럴 것이다. 혹은 방 한 편에 놓인 사진 한 장, 매일 밤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노래 한 곡,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영화 한 편일 수도 있다.


 월세 오 만원이 오른 집을 포기하고 위스키 한 잔을 택한 미소의 삶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바쁘게 흘러가는 도심 한 가운데, 1평 남짓한 작은 텐트 속에서 불을 켜는 미소. 미소의 삶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모든 걸 다 버려도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세 가지. 그것이 분명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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