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버드박스'에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으로 인해 죽는다. '그것'에 취한 사람들은 두 눈이 멀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긴다. 종말과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맬러리(산드라 블록 분)은 두 아이와 함께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때 관객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등장하는 '그것'의 존재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이란 무엇인가? 스크린에선 그저 바람만이 휘몰아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황홀한 표정에 젖어있고, 공격적으로 타인의 안대까지 벗겨낸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것'의 실체와 닿아있다. 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곧 관념적인 대상과 맞닿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믿고자 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념과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의 방향에 운전대가 되기도 한다. 또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마음, 즉 편견이나 선입견과도 비슷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맬러리는 '그것'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맞서 싸운다. 재난이 발생한 이후 태어난 두 아이와 종말에 가까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강해져야만 했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에 대해 입을 다물고 꿈 조차 꿀 수 없도록 한다. 마치 그런 세상은 이제 없을 거라는 듯.
"살아남는 건 사는 게 아니야."
그러나 톰(트래반트 로즈 분)의 생각은 다르다. 모두가 죽고 아이들의 양육자가 된 두 사람은 이 부분에서 갈등을 빚는다. 톰은 맬러리와 달리 볼 수 없어도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맬러리가 그의 말을 다시 떠올린 건, 함께 의지하던 톰이 죽고 홀로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강물을 건너고도 고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정적인 순간 맬러리는 아이들에게 이전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만나본 적 없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살아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꿈을 꾸기 위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이야기에 끌려 맬러리의 품으로 돌아온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끝나는 곳은 시각장애인들이 모여있는 센터다. 눈 앞의 것들을 보지 않고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새들이 지저귄다. 생명들이 깃드는 곳에선 또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이름도 없이 '보이'와 '걸'로 불리던 아이들은 각각 톰과 올림피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갖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본다'는 관념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다. 감독은 끝까지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