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한 김단단 May 31. 2020

누구에게나 구명조끼가 필요하다

한 동안 무기력에 빠져 좀비처럼 살다가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 하니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사는 게 왜이리 어렵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장 일상생활 하는 것도 나한테는 어려운 일인데 학교 수업과 과제에 취업 준비까지 하려니 여간 부담될 수가 없다. 적당한 부담이라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만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부담은 전혀 적당하지 않다. 내가 너무 작은건지 부담이 너무 큰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내가 그 부담에 자주 압도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현실도피 모드에 들어간다. 도저히 그 부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들은 다 치워두고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게임도 처음 한두 판은 재밌을지 모르지만 금새 지루해진다. 그래도 계속한다. 왜냐하면, 현실로 돌아가 해야하는 일을 마주치기가 싫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없는 활동으로 현실을 외면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나는 이걸 '어두운 심해에 빠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여러분도 종종 심해에 빠질 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심해에서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심해에 빠졌을 땐 가능한한 빨리 빠져나오는 게 좋다. 심해에 빠지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더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간도 낭비된다. 따라서 심해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린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아는 대로 행동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에겐 각자의 '구명조끼'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올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나를 수면 위로 올려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여태까지 심해에 빠졌을 때 조던 피터슨과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분들의 책 구절을 되뇌이거나 영상을 주로 봤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구명조끼를 발견했다. 바로 '글쓰기'다.

나의 새로운 구명조끼 '글쓰기'


글을 쓸 때면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하다. 평소에는 생각이 너무 많고 여러가지 걱정에 시달리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온전히 글에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너무 좋다. 글을 쓸 때도 현실도피와 같이 시간이 날아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 느끼는 시간이 날아가는 경험은 현실도피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또 글을 쓰면 오르락내리락하던, 지맘대로 춤추던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진다. 실제로 감정을 표현하고 적는 게 감정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심해에 머무는 시간이 이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구명조끼를 꼭 마련했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기도 좋고, 친구와 수다떠는 것도 좋다. 그리고 구명조끼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몸에도 팔에도 다리에도 튜브를 달고 있으면 더 잘 떠오를테니까. 또한, 구명조끼를 많이 갖고 있다면 한 없이 가라앉고 있는 사람에게 줄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이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