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너무 강하게 쥐려고 하면, 모든 게 바스라지니까

by 델리만쥬

SNS의 흐름은 불과 10년 전 카카오스토리로 시작하는 것 같다. 초등학생이었던 때, 방과 후면 카카오스토리로 썰을 푼다던가, 하면서 우정을 다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흐름은, 차차 페이스북으로 옮겨 갔고, 고등학교 시절엔 인스타그램으로 찬찬히 옮겨졌다.


사실 10대에 스마트폰은 카카오스토리 때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건 이미 인스타그램이 서막을 올리고 있던 시점인 2016년이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건 2020년이 다 되어서였다. 용량 때문에 스마트폰에 많은 사진을 저장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기에, 몇 없지만 그럼에도 추억이 담겨있는 플랫폼은, 페이스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카카오스토리라기에는, 너무 어렸고, 너무 옛날이라 너무 흐리다.


이 페이스북을, 깔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가, 또 얼마 전 깔았다가 지웠다가, 어제 저녁 또 다시 깔았다. 깔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페이스북 그룹을 메인으로 소통하는 공동체가 있어서였는데, 들어가자마자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의 스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인스타그램에서 페이스북 연동으로 올린 스토리겠지만, 한때는 페이스북 스토리로 올렸을 그 스토리 시리즈가 눈에 , 허망하게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입학할 때(,,2017,,,,실화냐)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눌렀던 페이지들이 있었다. 그중엔 고등학교 페이지도 있었다. 뭣도 모르고, 아팠던 시기와는 별개로 다가올 미래가 간절했던, 현실에서 도망치는 수단으로 미래가 고팠던 시절, 눌렀던 거겠지? 내가 그 미래의 모습과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홀린 듯이 눌러봤다. 2014~16이라는 숫자가 적힌, 나와 같은 색상의 학생증을 들고 목에 메고, 화장기 없이 수수하지만 자유로워서 빛나는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고3이었을 그 시기, 어떻게 저렇게 자유로웠을까. 내 수험생 시절과 너무 대비되어서, 어떤 수업인지 알겠는데 그 수업 때의 내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선명한 사진들이 더 고통스러웠다. 질투라던가 부러움이 아닌, 무력감에 가까운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 진한 사진은, 미래를 열망하던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8년 전 사진만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의 모습을 스쳐 지나온 셈이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잊지 않겠다고 너무 강하게 쥐려고 하면, 그 기억은 바스라진다. 물건이야 손 안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은 심하게 왜곡된 상태로 바스라진다. 땀에 절어 흐릿해지고, 키워드 몇 개만으로 남고 만다. 어쩌면 나한테 저 시절의 열망은, 이미 왜곡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울면서 보냈던 나날들을 열망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퉁칠 수는 없지만 이미 바스라진 기억들을 재건할 수는 더더욱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더 건드렸다가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마저도 다다를 수 없도록 만들 것이므로. 과유불급이라는 건, 그래서 너무 강하게 쥐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건망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