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예의 그 어느 사이

'줏대'라는 게, 결국은 중용이고 균형이 아니었을까.

by 델리만쥬

언젠가 줏대에 대해 적었었다. 내 성격에 대한 일종의 고찰과 함께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 소신이라는 게 뭔지, 내 생각은 뭔지를 점차 찾아내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하는 거니까 ^_^.


뭐 소신이든, 내 뜻은 참 명확한 애였으니 그건 걱정할 바가 아니지만, 결국은 이 줏대가 균형으로 이어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소위 말하는 '예비고1' 시절 영어학원에 갔다가 본 모 지문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잘못된 방향 같다면 지금이라도 돌아서야 한다'고, 그것도 하나의 용기라고.


그런데 어디선가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한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되지 않도록(따지고 보면 잘잘못은 결과를 봐야 아는 거니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야 한다, 고. 그게 오히려 더 용기 아니겠느냐고.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느 사이에, 이런 경우엔 누가 봐도 잘못되었으니 뒤엎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아예 미래를 모르겠다 싶을 땐 장기 목표를 두고 어떻게든 가능하게 해보는 등의 노력을 해봐야 한다. 그야말로 '케바케'일 거고 경우에 따라서도 모호하다면 그땐 본인이 가진 생각, 말 그대로 그 '소신'에 따라야 할 것이다. 소신이 고집에서 균형이 되는 시점이다.


이런 관점의 소신은 참 많이도 등장하는 것 같다. 보통은 '내가 지켜야 하는 루틴'이나 '나만의 규칙' 같은 이름으로. 가령 중고등학교 시절, 우정과 공부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되면 '몇 시까지는 놀고 몇 시까지는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 같은, 자신만의 약속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하지 않을까. 조금 다른 예시라면 '어제 얘네랑 놀았으니까 오늘 야간자율학습 시간엔 뭐를 공부해야겠다, 대신 심화자습도 해야겠다' 같은 그런 생각,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소신이, 결국은 균형이 된다. 정말 잡기 힘든, '쟤는 맨날 뭐 해야 해서 안 된대'로 점철되기 싫은 마음과 '그럼에도 내신은 챙겨야 해' 같은 의무감 간의 균형.


요새는 나도 저런 균형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대학원생이 된 이후로, 지도교수의 역량이나 성격이 나랑 정말 안 맞는다 싶어 견디다가도 불과 1년 전, 공기가 차가워지던 이맘때쯤 매번 들여다보던 대학원 입시 카페를 또 들여다보면서 머물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 대학원 생활이 잘못되었다면, 내가 결국은 원하는 도메인이 바이오가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아예 다른 과를 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이미 학부를 추가학기까지 다녀 가면서 5년을 다녔는데 대학원 1년을 또 낭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선택이 과연 적절할까 몇 번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모두가 인생은 처음이다. 뭔가 해보는 게 처음이고, 누굴 만나는 게 처음이며 어떤 시기를 처음 만나고 어떤 감정이 생경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게 처음인데, 먼저 해보았냐 마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그 '처음'들에 대해 자신만의 소신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야 한다면 균형을 잡아갈 만한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고집과 균형 그 어느 사이, 여기에서조차 균형점을 또 찾아가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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