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떠먹여주는 설명은 정말 나쁠까.

생각을 빼앗는 설명 vs 잘게 쪼개서 떠먹여주는 설명은 한끗 차이.

by 델리만쥬
쌤 설명이 저랑 잘 맞아요, 이해가 잘 돼요!

학생들 중 간간이 이렇게 대놓고 칭찬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강사 입장에선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하게 말하자면 .. 나는 좀 긴장했다. 기분이 좋긴 좋으면서도 경계심이 들었다.


떠먹여주는 설명.

내가 지금, 이 애들이 연어를 잡는 법이 아닌 연어를 과하게 먹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뭐든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이 말은 늘 양날의 검처럼 따라다닌다. 설명을 많이 하면 학생이 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말, 너무 친절하면 스스로 풀 힘을 키우지 못한다는 말.


나만 해도 학창시절 그런 가치관을 가진 선생님께 배워본 경험이 있다. 그런 설명을 들을 땐 좋았는데, 학원에 다녀오면 그 유형을 풀지 못했었다. 몸으로 체감했던 만큼 그 말을 모르는 건 아니었고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 항상 한 번 더 멈칫, 한다.이 설명이 아이의 이해를 돕는 건지, 아니면 내가 대신 생각해 주는 건지.


내 설명은 내가 봐도 분명 말이 많은 편이다. 과정도 다 보여주고, 문제를 읽으면서 이 문제가 너에게 뭘 물어보는 걵, 뭘 요구하는 건지 다 설명하면서 왜 이 길로 가는지, 또 어떤 방법이 가능한지 죄다 설명한다. 그래서 수업 중간중간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건 얼마야?” , “이거랑 아까 거, 뭐가 같지?”, “여기서 갑자기 왜 방향이 바뀌었을까?”

설명을 이어 가다가 일부러 문장을 끊는다. 아이의 머리가 내 말을 따라오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식의 설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냥 고개만 끄덕이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문제에서 자기가 이해한 만큼의 풀이를 쓰고 오기 시작한다. 완벽하진 않다. 중간에 틀리기도 하고, 계산 실수도 있고, 어설픈 문장이 섞여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풀이에는 최소한 “이해하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그 흔적을 꽤 중요하게 보는 게, 거기서부터 내가 다시 설명해주면 되니까. 밑 빠진 독에 내 설명을 붓는 게 아니란 말이니까.


물론 모든 아이에게 이 방식이 맞는 건 아니다. 고등부 클리닉을 할 때는 수준 차이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쉽게 설명하려다 보면 잘하는 학생은 아예 설명을 안 들으려고 한다.

“아, 이거 아는 거예요.” 하고 자기 스스로 풀어보는 데 집중하거나, 그냥 나중에 혼자 설명해달라고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설명을 멈춘다. 떠먹여주는 설명이 아니라 넘겨주는 설명이 필요한 애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떠먹여주는 설명이 항상 나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에게, 언제, 어디까지가 빠진 채로 이야기될 때 문제가 된다.


어떤 아이는 생각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출발점에 서 있지 않아서 문제를 못 푼다. 이럴 때 “한번 더 생각해 봐”라는 말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겐 일단 출발선까지 데려다줄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떠먹여주는 설명이라기보다 입구를 열어주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입구에 들어간 다음엔 혼자 걸어야 한다. 하지만 문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다면, 누군가는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하면서도 항상 이 질문을 같이 들고 간다.

“지금 이 설명은 아이의 생각을 대신하는 걸까, 아니면 생각이 시작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을까". 이 기준이 없으면 설명은 쉽게 자기만족이 된다. 애가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말을 잘하는 선생이 되는 건 쉽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에서 말이 멈추는 지점을 느끼는 건 어렵다. 돌이켜보면 내 설명이 잘 맞는다고 말해준 아이들 중 대부분은 처음부터 잘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S 문제집의 가장 쉬운 단계는 무난히 풀어내도, 예제 단계로만 넘어가도 무너지는. 어딘가에서 한 번 이해를 놓쳐본 경험이 있고, 그래서 설명이 연결되는 순간을 유난히 또렷하게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이 애들이 조금씩 자기 풀이를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적어도 지금 설명은 애들 생각을 뺏는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음 질문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디까지 기다리고, 언제까지 설명하고, 언제 넘어가야" 할까,가 된다. 애들마다 다르고, 같은 애여도 단원마다 다른 이 질문. 그래서, 나는 진도를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같은 단원도 어떤 교재로 얼마나 반복할지를, 그렇게 애들마다 구축되는 이 육하원칙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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