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문제를 틀리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정답이 있는 세상에서조차, 변수는 하나가 아니다

by 델리만쥬

1장에선 약간의 내 소개를 했다면, 2장에선 그 일들 중 가장 오래 해 온 학원 강사 일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나는 수업 시작할 때, 항상 똑같은 말로 시작한다. "숙제 어땠어요? 많이 어려웠어요?"라는 말. 그리고 숙제 질문을 해결하고 복습테스트로 넘어간다. 같은 문제여도 학생마다 틀리는 원인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냅다 복테 먼저 보면 나야 편하다. 채점이야 기계적으로 하면 되고, 설명해서 애 이해시키면 된다. 이 학원 처음 왔을 때 하던 알바가 이 일이었다. 그런데..겉으로 보면 뭐 다 똑같은 오답인데, 그 오답은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즉, 단순한 채점과 설명은 학생마다 다른 오답의 원인을 해결하진 못한다.


가령, 2학년 2학기, 사각형의 성질 단원에서 어떤 아이는 계산 하나를 실수해서 틀렸다. 풀이과정을 보다 보면, 개념은 알고 있었고, 풀이 흐름도 맞는 게 보이는데 말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는 마름모의 정의와 성질을 헷갈려서 틀렸다. 확률 단원에서, 어떤 아이는 확률의 곱의 법칙을 쓴다는 건 어렴풋이 이해한 게 보이는데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해서 질문을 했고 어떤 아이는 곱의 법칙을 써야 하는지 아닌지조차 몰라서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하다 질문을 했다.


결과는 같다. 둘 다 틀렸다. 하지만 그 문제를 틀린 학생 모두에게 같은 말을 건네는 건 이상하다. 설명 이후에도 그렇다. 한 아이에게는 '이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게 정말 큰 발전'이라고 칭찬하면서 다음엔 어떤 것을 개선할지 얘기했고, 다른 아이에겐 '나아지긴 했지만 이건 너무 아쉽다'고 평가하면서 풀이과정을 쓰면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자고 제안했다. 점수가 같아도, 필요한 처방은 제각기 다르다.


고등부 클리닉을 하면서 이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집합 단원을 풀던 날이었다. 두 학생이 같은 문제를 틀렸다.한 학생은 벤 다이어그램에 숫자 하나를 잘못 넣어서 틀렸다. 전체 구조는 이해했지만, 손이 실수했다.

다른 학생은 합집합과 교집합 기호가 가득한 계산 과정에서,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실수를 했다.


주변에선 그렇게 얘기한다. 야, 그냥 알바(최저시급 받는 알바보다 좀 더 받고 대신 하는 일이 좀더 많은)인데, 적당히 하면 그만이라, 말이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다. 그냥, 다 “집합 문제 오답”으로 처리하면 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음 시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고 나는 기왕 하는 일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의 정체성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어떠한 정체성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학원 온 이래로 항상 학생마다 제각기 다른 처방을 내린다. 한 아이에게는 “다음엔 여기만 한 번 더 확인하자”고 했고, 다른 아이에게는 헷갈리는 계산 과정을 좀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팁이 될지도 모를 내 경험들을 공유한다. 같은 문제, 다른 접근, 다른 설명.


그때 깨달았다. 문제를 틀린 이유는 절대 하나가 아니다.


학생들, 어떤 땐 학부모님들이 종종 물어보신다. “이거 왜 틀렸어요?” "저 점수 왜 이럴까요" 라고.

그 질문은 사실 “제가 못해서 틀린 건가요?”에 가깝다.


나는 그 질문에 웬만하면 이렇게 답하려고 한다. “못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멈췄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설명할 때도 애가 어디까지 풀었는지부터 파악하고 설명한다. 멈춘 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다시 출발하는 위치도 달라지니까. 다시 말해, 오답을 결과로 보지 않고, 이 아이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로 본다. 오답은 점수는 얻지 못할지언정 나에게 이 아이가 무엇을 알고 있고, 어디서 막혔는지를 알려주는 아주 좋은 신호이고 그걸 알아야 내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설명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학원에서, 또 OMR 판독기 아래에서 점수는 빨리 매겨진다. 하지만 이해는 천천히 드러난다.


나는 그 느린 속도를 인생에 적용하는 사람인 만큼, 아이들의 속도도 조금 더 믿어보려고 한다. 오답지 위에 남은 흔적들, 지워진 계산, 엉킨 기호들. 그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여기까지 왔다는 각자의 기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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