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착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원래 헤매는 게 청춘이고 20대니까

by 델리만쥬

누군가 그랬다. 젊음은, 그리고 청춘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할 실패를 마음껏 해도 되는 시기라고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인'이기 때문에 저런 경험은 자유롭게 하더라도, 뒤따르는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게, 저번 1-4의 끝에서, 이 '유예' 상태를 단순한 통과 지점으로만 두고 싶지 않았던 이유다.


그렇다면 이 상태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직 정착하지 않아도 되는 게 맞을까?


만 스물 넷, 뜨내기가 하는 대답이 얼마나 거창하겠냐만은.. 솔직히, '괜찮다'고 확실하게 대답하긴 쉽지 않다. 명함을 주고 받을 때 직함도 없고, 한 줄로 커리어가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은 졸업했으니 그 공모전,프로젝트 등등의 경험을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누군가의 소개 문장 속에서 또렷하게 들어맞는 자리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에 속해 있느냐고 물으면 늘 설명이 길어지고,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괄호가 붙는다. A를 해요, 그런데 B와 C를 곁들인,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전부 불안으로만 치부하진 않는다. 유예의 시간 속에서 분명히 쌓이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그간 작성하고, 저장만 하던 조언 포스트를 올렸는데, 이 포스트의 의도는 하나다. 완전히 소속된 것도 아니고 외부자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소속이 몇 개든, 역할은 흐리지 말자. 포스트는 회사에서의 역할을 기준으로 작성했지만, 모든 역할에서 이 태도는 견지하고 있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담이지만 오죽하면 부모님은 나를 '곰'이라고 부르신다. 여자애가 저렇게 둔해도 되냐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이 조직에서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감각은 분명 빨라졌다. 역할마다 다른 기준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기준 안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 적어도 나는 그런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회사가 아닌 다른 자아들도 불러와보자. 연구실에선 논문을 읽고 리뷰하면서 나만의 RQ(Research Question)을 도출하고, 영어로 발표해야 할 때도 있다. 학원에선 같은 수학문제를 두고도, 학생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어떤 애는 닮음을 써서 설명하고 , 어떤 애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설명하고, 똑같이 닮음을 써서 설명해줘도 누군가는 왜 닮음인지부터 설명해주고, 누군가는 비슷한 유형에서 닮음 찾기를 연습시킨다. 이해의 속도도, 막히는 지점도 다르니, 당연한 이야기다.


아마 재작년 아니면 작년 어느 날이었을 거다. 연구실에 갔다가 읽어야 하는 논문을 인쇄해서 파일에 넣고 학원 간 날. 쉬는 시간, 파일 속의 그 종이가 뭔지 슬쩍 곁눈질하던 학생이, 쌤은 무슨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전공 용어를 벗겨내고, 구조만 남겨서, 이 아이가 그냥 적절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냈다.


* TMI 1: 나는 애들 모의고사 시험지나 논문 같은 건 인쇄해서 클리어파일에 넣고 다닌다. 지금도 그럼..

* TMI 2: 학원 애들은 나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대학교 졸업했다니까 '스껄하다'고 하기도 하고.. 설명해주러 가면 어디서부터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도 꽤나 편하게 하는 편. 다시 말해 '편한 어른'쯤으로 대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중학생 애들한테 내 연구주제는 TMI였을 텐데, 정말 편하게 생각하긴 했던 것 같다.




저런 경험들로 말미암아 생각한다면, 나는 늘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학문의 언어, 실무의 언어, 교육의 언어. 이 셋을 오가며 설명하는 사람으로. 물론, 아직 이 능력이 대단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감각은 있다. 경험들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서로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회사에서의 일을 하던 경험으로 연구실 행정처리를 돕기도 하고, 연구실에서 읽은 LLM Fine tuning 논문을 회사 Task에 적용하기도 하고, 중등부 수업을 하던 경험으로 고등부 함수를 다시 설명해주기도 하고.


이런 변화의 시작과 함께, 유예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일의 종류보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메타인지'가 꽤나 부족했다. 뭘 잘 하고 뭘 좋아하는지, '그냥 무던해요'라고만 하던 애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내 몸이 '나 지금 과로야'라고 말할 때의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됐고 어떤 리듬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는지, 반드시 필요한 시간은 어떤 시간인지 등을 알게 됐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내성적이지는 않지만 내'향'형이다. 처음에 친해질 때 오래 걸리고, 노래방, 콘서트 같은 시끄러운 분위기는 매우 불호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수다 떠는 건 좋아하고, 대신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좋아하는 카페에서 보내야 한다. 많이들 얘기하는, '너가 다니는 집이야?'의 그런 카페. 프랜차이즈지만, 그 지점 아니면 잘 안 갈 만큼, 유독 마음이 편해지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그런 곳에서의 시간이 있어야 내가 덜 무너지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사소한 감각들을, 유예 기간 동안 알게 되면서 이제는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학부 시절까지, 잘 몰랐던 나를, 그리고 나의 감정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건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학습이기도 하다. '취미를 찾고 있어요' 단계여야 이런저런 원데이클래스도 해보고 하면서 나는 이런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 할 때 맛보기가 아니라, 정말 경기도 해보고 작품도 만들어보고 하면서 나에 대한 이해도를 쌓아야겠지.


이렇게 생각해본다. '아직 정착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묻기보다, 이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묻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비록 아직 한 자리에 고정되지 않았지만, 역할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있고, 언어를 바꿔 설명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고, 무너지기 직전의 나를 알아보는 감각을 키우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는 한국 나이로도 아직 26살이다. 마냥 어리진 않지만 많은 나이도 아니다. 언젠가는 하나의 직함으로 정리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서로를 연결하며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정착하지 않은 이 시간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만의 기준을 축적하는 중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여전히 색칠은 안 되어 있지만, 스케치도 없지는 않다. 하늘도 사람도 스케치하면서 방향 없이 떠다니고 있지는 않다. 이 정도면, 푸르진 않아도 안심해도 되는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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