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바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

성과 없는 불안정성에도 포기는 못 해

by 델리만쥬

요즘 내 하루를 설명할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붙이는 말은

“바쁘다”라는 말이다. 사실, 요즘이라기보단 학부 때부터 그랬다. 이런 일을 찾아나섰다가, 저런 대외활동을 하는데 막상 내 전공은 이과대인. (여담이지만 3전공은 이런 활동들의 짬뽕 속 이뤄낸 거였다)


어떤 날은 논문 마감이 코앞이라 새벽까지 문장을 붙잡고 있기도 하고, 맞는 말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도 마감을 넘길 수는 없어서 의심을 안고 몇 번이고 오버리프 컴파일 버튼을 누른다.


잠을 거의 못 잔 채로 다음 날 수업에 들어간다. 팀플 있는 수업이면 전날 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집중이 필요하다.

나는 다시 학생의 자리에 앉아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중요한 부분은 타이핑을 하고, 과제가 언제구나 체크를 한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으로서 수업을 준비한다. 애들 오답프린트를 뽑아놓고, 같은 내용이라도 학생마다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각각 어떻게 이해시키지, 고민하면서 다르게 정리해본다.
말을 고르고,속도를 조절하고, 상대의 이해를 가늠한다.

그 사이에는 회사 일도 끼어 있다.문서를 정리하고, 코드를 갈아엎으면서 기획안과 제안서를 준비한다. 모호한 표현을 남기지 않기 위해, 또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고 쓴다.


일이 끝나면 나를 기다리는 건 만료를 앞둔 자격시험이나 포트폴리오, 집안일 같은, 현실적인 '나'를 위한 것들.

그렇게 하루에도 내 위치는 계속 바뀐다.확신을 가지거나 결단이 빨라야 하는 자리와 유예가 허용되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쉬고 있는 순간에도 완전히 쉬고 있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한다.머릿속 한편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남아 있고, 다음에 들어가야 할 역할이 끊임없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되게 바쁘게 사네.”"갓생이다,야."

하지만 성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에 갓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내가 느끼는 피로는 일의 양보다 상태를 전환하는 횟수에서 온다는 건 체감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방식이 달라지는 자리에 몸을, 그리고 내 자아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당장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어느 하나로 또렷하게 정의되기보다는, 여러 상태를 견디며 내 인생의 주체가 될 '나', 나도 몰랐던 '나의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중에 가깝기 때문이다.

완성된 사람도 아니고, 방황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상태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이 그저 성과를 위해 지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를 버티게 할 태도를 조금씩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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