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하는 일 vs 견디는 상태

각 조직과 나의 결정계수는, 0.8 미만이 아닐까?

by 델리만쥬

나는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청자에 따라 말을 조금씩 다르게 한다.
청자에게 더 '좋게' 들릴 내용이 다 달라서가 아니라, 어느 쪽도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여러 면접을 봤었고, 당연하지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편해진다는 걸 안다. 그래야 상대도 이해하기 쉽고, 나 자신도 덜 흔들리는 것처럼,안정적으로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편리함 때문에 '지금'의 나를 너무 일찍 고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는 어떤 한 방향으로 계속 밀어도 되는 상태가 아니다. 여전히 바뀌고 있고, 확인 중이고, 그래서 아직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질문들이 많다. 저번 화에서, '그래서 나는 이 감각을, 불안으로만 부르지 않기로, 대신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고 한 건 그래서이고, 나는 정체성을 ‘정의’하기보다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 말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선택 앞에서 무작정 결론부터 내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의 섣부른 판단이 나중의 나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테니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내가 하는 일들은, '나'를 분명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는 태도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는 이 유예의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미루고 있는 게 아니라,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어떤 속도로 살 것인지, 무엇을 이해하지 않은 채 넘기지 않을 것인지, 어디까지는 버텨도 어디부터는 멈춰야 하는지.


이 질문들은 당장 나를 한 문장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무 방향으로나 흘러가게 두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문장들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메타인지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말하자면 '나에 대한 소개'를 output으로 만들기 위한 input들을 축적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 정체성을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확실함을 방치하는 일이 아니라, 섣부른 확실함을 경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어떤 상태를 견디고 있는가'에 가까운 사람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며 견디고, 정리되지 않은 정체성을 위한 input이 쌓이는 과정을 지켜보고, 여러 역할 간 미세한 긴장 속 균형을 맞춰 나간다. 그렇게,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매일 조금씩 데리고 사는 상태를 견딘다.


단순히 바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일이 많아서 바쁘고 힘든 게 아니라, 의미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데서 오는 피로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런 피로를 견디고, 책임 있는 태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꽤나 소모된다.


나는 완성된 사람도 아니고, 방황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다만,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상태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상태를 그저 통과 지점으로만 여기고 싶지는 않다.

이 시간 자체가 나의 태도를 만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담.

원래는 intro를 20장으로 썼기 때문에, 1장부터는 바로 본론으로 시작해야지, 했는데 그러기에는 1화부터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해서, 시작인데 너무 무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1화는 약간의 리마인더 겸 예열, 그리고 1장은 전체적으로 내 하루를 채우는 일들과 그에 대한 나의 태도를 소개하는 장으로 수정했다. 학원, 연구실, 회사 이야기랑 내 생각 이야기가 교차로 나오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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