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그런 소외감 아닌 소외감, 그리고 한 줄로 정리되지 않던 나의 위치

by 델리만쥬

1장에서의, '아직 답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고 했던 그 문장 뒤에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남아 있다.


2023년, 3학년까지 마치고 첫 휴학을 했던 해.

휴학생이었지만 복학하면 4학년이었기 때문에, 취업준비의 길로 갈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지, 여전히 헤매던 시기였고, 우선은 맛보기처럼, 학부 인턴*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희망 분야 연구실 중 학부인턴을 모집하는 곳이 있어,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그때 그 생경한 감각을 또렷하게 느꼈다. 분명 뭔가를 많이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류로 옮기려니 한두 줄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 대학생 신분으로 희망 분야 연구실(연구소)에서 일정 기간 실제 연구를 경험하는 제도.


1년을 갈아 넣었던 연합 프로젝트는 논문을 냈다는 1줄, 수상 경력이 있다는 1줄, 도합 2줄로 끝나버렸다. CV(curriculum vitae)를 작성하면서는, 내가 회사를 다녔던 6개월이 1줄로 정리되었다. 이런 경험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경험해본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내 시간이 너무 쉽게 접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학부 4학년 때부터 함께해 실제 론칭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1년하고도 반, 연차로만 따지면 3년차에 접어든 셈이지만 시작한 지 거진 1년이 다 되어서야 SECOM 출입권한을 부여받았고, 다른 말로 그때까지는 내 마음대로 출입조차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회사 도메인 메일은 1년 반이 지나서야 생겼다. 분명 회사 관련 일을 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속해 있다'는 표시는 없었다. 분명 협력연구에 대해 나, 지도교수님, 회사 간 협의는 이뤄져 있는데 나는 완전한 연구실 소속도 회사 소속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원에선, 단편으로 썼던 '강의실을 빼앗긴 날' 같은 일들이 있었다. 출근하고 나서야, 내가 먼저 수업하는데 쓰는 강의실을 식사 장소로 '쓰일 수도 있다'고 전달받았던 날.

결과적으로 지금은 식사 장소를 옮기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나는 이날 '내 경력과 무관하게, 나는 이런 위치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허탈과 분노가 섞였던 이날의 감정은, 해결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이날 이전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중3 대부분을 고등부로 올려보내고, 남은 중등부를 수업하던 어느 날, 그날도 원래 수업하던 강의실에 처음 보는 선생님이 처음 보는 애들을 수업하고 계셔서 급하게 다른 강의실을 찾아나서야 했었다.

가장 서늘했던 건, 집안 사정으로 학원을 이틀 정도 쉬어야 했을 때였다.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빠지는 이틀을 대신 수업해주실 대타 분을 구했었다. 아무래도 개인사정이고 하다 보니 애들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 다음 주에 출근하니, 아이들은 입을 모아 '선생님 그만두시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한 주만 빠진다는 말은, 담당 선생님과의 개인톡방에서만 울려 퍼진 메아리였다.


그때쯤부터, 명문화하지 못했을 뿐 깨닫긴 했던 것 같다. 나의 부재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슈였고, 그렇게 나의 부재가, '공백'이 아닌, '소식 없음'으로 처리되는 위치였구나, 라고.



회사에서도, 연구실에서도, 학원에서도.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내가 어느 집단에도 완전히 내부자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학생이면서 연구자이지만, 연구자이면서도 아직은 견습이고, 일을 하지만 고용된 사람은 아니고, 가르치지만 시스템의 중심은 아니다.

그렇게 구체화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은 외롭지만, 동시에 나를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왜 있는지, 무엇을 책임지고 있고, 무엇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지.

그래서 나는 이 감각을 빨리 지워버리려 하지 않았다.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성급히 정하기보다, 어디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쪽을 택했다.


아직은,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아직 답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고 했던 그 문장 뒤에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펼쳐지는 우주'는, 분명히 존재한다.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보이는 구조와 태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다음 선택을 할 때, 적어도 나를 속지 않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건 아직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나를 너무 일찍 고정시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나를 고정시킬 완벽한 자리를 찾아 헤매는 20대의 본분에 충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감각을, 불안으로만 부르지 않기로, 대신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이전 01화20. 결정을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