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결정을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

수미상관, chap.20부터 시작하는 내 인생 기록

by 델리만쥬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20년.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 아닌, 전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처음 보는 분야를 전공하게 됐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그런 고독 속에, 한동안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래서, 뭘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리고 그 질문은 진로를 찾아가면서, 또 청춘을 즐기면서도 반복되었다. 고학년이 되던 시점까지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직무도 바꿔보고, 인턴을 하고, 3전공(전공이 3개다) 171학점을 들으면서, 해야 할 일들을 했고, 주어진 책임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질문은 남았다.

마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꼭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 것처럼.


학원 알바를 처음 시작했던 때도 2020년이었다.

그때 나의 첫 제자가 된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쌤은, 어떤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생각했던 꿈은, 2가지였다.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답을 하긴 했다, '대학생'이라고. 당연히 직업은 대학생이지, 최소한 졸업할 때까진.

어떤 '사람'이 될 거야? 음, 그때까지는, '내 지식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학원 강사를 꿈꿨던 적은 없다. 이건 맞는데, 저건 아니야.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지?


중학생이었던 아이가 던진 '어떤 사람'이라는 말은, 내 관점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대개 말한다 : 결정을 해야 불안이 끝난다고.

하나를 고르고, 방향을 정하고, 정착해야 안정성이 생기고 마음이 놓인다고,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미루는 사람에겐 많이들 재촉을 한다. 또 자칫 망설이는, 우유부단한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며 모든 유예가 회피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유예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답을 고르는 대신 조금 더 오래 생각하는 쪽을 택해 왔다.

어차피 삶은 B와 D 사이의 C,choice, 즉 선택이라는 말도 있는데, 답이 있는 것마냥 그걸 빠르게 결정하고 싶지도, 지금의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완전히 알지 못한 채로 확신을 가장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정을 유예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렇게 '나'에 대해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게 되는 상태일 것이다.


속도보다 이해를, 결과보다 태도를,확신보다 책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이건 아직 완성된 답은 아니지만 내가 붙잡고 있는 기준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스스로 던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적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결정하지도, 나를 소모하는 방향으로 섣불리 정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결정을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는 건 회피하겠다는 뜻도, 영원히 선택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니다.
언젠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때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 정도면, 아직까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담.

가장 마지막에 넣을 내용을 인트로로 집어넣었다. 나름대로 수미상관 구조로 작성하고자 한 것인데, 글은 좋아해도 쓰는 건 처음이라 조금은 걱정된다. 글 솜씨는 별로지만 투박한 진솔함을 담아 작성해보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