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를 서두르면 안 된다, 가 아니다
학원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그래서 어디까지 나갔어요?”라는 말이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가 꽤 큰데, 내가 대학교 새내기 때 알바했던 학원에선 이번 방학엔 어디까지 나가야 한다, 는 게 확고했고, 학창시절 다녔던 학원은 그보다 빡세게 굴렸으며, 지금 학원은 나에게 자율성이 있다.
그 질문에는 진도를 기준으로 한 시간표가 있고, 그 시간표에 맞춰 아이들이 따라오길 바라는 조급함이 섞여 있다. 나도 그 조급함을 모르는 건 아니다. 때문에, 처음엔 아예 월별, 학생마다 쓰는 주교재에 맞춰 진도표를 작성했었다. 무조건 오늘은 여기까진 나갈 거야, 라고.
한 단원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애들의 성취감도 떨어질 뿐 아니라 괜히 뒤처지는 것 같고, 나에게 자율성이 있다지만 “이 정도도 아직이야?”라는 눈치가 느껴질 때도 있다. 고등부는 그게 좀 덜 하지만(아직 안 익숙해서 그래~ 하면서 넘어간다지만), 중등 수업은 아니었다. 내가 전업 강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이미 다음 단원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들리고, 자승자박이라고 내가 쓴 진도표가 내 목을 죄어 왔다. 그럼에도, 나름 경험을 쌓고 나서부터 나는 진도를 급하게 빼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게 내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고, 확신 없이 넘어가는 걸 불편해하는 타입이라서. 그런데 가르치다 보니 그 이유가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진도를 서두르면 아이들은 분명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문제집의 페이지 수는 줄어들고, 겉보기엔 ‘진행’이 된다. 질문을 한다고 해도, 어찌 됐든 넘어가긴 한다. 하지만 이해는 그 속도를 그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결국 똑같은 문제를 또 틀리고, 복습테스트의 문제가 더 이상 '복습'이 아닌 새로운 문제에 머무르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수학이라는 장기 마라톤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으로 나가자'던 나의 목표는 무색해진다.
지금 고1이 되는 애들 가르칠 때, 무리수 단원을 유난히 오래 붙잡은 적이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무리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최소한 3학년 1학기에선 인수분해랑, 이차함수로 이어지는 부분이라는 것. 이과 고등학생, 이공계 학사, 석사과정을 지나오며 이미 체감했다. 다시 말해, 인수분해를 안 하고 고난도로 계속 가는 건 무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계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일단 넘어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를 맞출 필요도 있었고 애들이 지루해하기도 했고. 여러 모로 현실적인 선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넘어가고 싶지 않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말을 잘 안 듣고, 자기한테 재미있으면 열심히 하지만 재미없으면 아무리 설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상이 되기 일쑤인 애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재미만 붙이면, 이거 고등학교 수학까지 쭉 잘 할 수 있는 앤데, 가능성 있는데.
하지만 현실은 그 가능성의 반대였다. 문제를 풀리면 풀릴수록 이 아이는 지금 이 단원을 ‘안다’고 착각하는 게 자명해졌다. 그 착각을 그대로 두고 다음으로 가면 나중에 더 크게 무너질 게 보였다. 결국 진도를 멈추고 심화교재와 유형서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중3이 되는 애들을 가르치는 지금은 좀 다르다. 늦게 들어온 아이가 있다. 같은 중3이지만 나와 보낸 시간이 짧았다. 이 아이는 무리수와 실수 단원을 계속 반복했다. 한 번 풀고 끝이 아니라, 기본 교재로 한 번, 오답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비슷한 난이도의 다른 문제로 또 한 번. 문제 수는 줄이고, 헷갈려하는 연산을 조금씩 섞었다.
그렇게 2회독, 3회독을 돌렸다. 1단원 복습 테스트도 계속 병행했다. 아마 복테로만 연산문제집 한 권 분량 풀렸을 거다. 솔직히..효율만 보면 느린 방식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아이는 어지간한 유형을 거의 다 맞히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인수분해를 천천히 나가기 시작했다.
인수분해를 나가면서, 소인수분해부터 설명하던 날. 그때 나는 확신했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통과 경험’이라는 걸, 말이다.
진도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건 멈춰 서 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아이들이 어디까지는 혼자 갈 수 있고, 어디부터는 나랑 같이, 다시 붙잡아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쓴다. 진도를 빨리 나가면 이 질문을 할 시간이 없다.
“이해했어?" 라는 질문은 너무 늦게 던져진다. 대신 나는 문제 푸는 속도, 풀이를 쓰는 방식, 중간에 멈추는 지점(어디까지 풀었는지)을 본다. 아이들이 ‘넘어갔다’고 말하는 순간보다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는 순간을 더 중요하게 본다.
사실 진도를 서두르지 않는 선택은 늘 불안하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도 뭐라 말하기가 민망할 때도 있고, 혹시 내가 너무 느린 건 아닐까, 혹시 아이의 시간을 괜히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다리기로 한다.
이해는 앞에서 끌어당긴다고 빨라지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진도를 나가는 건 선생의 결정이지만 이해하는 건 아이의 몫이다. 나는 그 몫을 조금 더 존중하고 싶다. 지금 이 속도가 아이에게는 가장 최적화된 길일 수 있다는 걸 믿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페이지 수보다 아이의 눈을 먼저 본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아직 남은 질문은 없는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진도를 조금 늦춘다. 부디 이 믿음이 옳기를 바라며.
정답이 있는 세상에서조차 이렇게 느려져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조급하게 결정할까, 싶을 때가 많다. 미친 듯이 늘어나는 일과 연구, 논문의 쳇바퀴 속에서 학원 일을 여전히 그만두지 못하는 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장소이자, 내가 도움이 되는 것, 나의 적성이 눈에 보여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