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애들에게 나의 모습이 투영되던 날
2장은 학원 에피소드를 다루는 장이긴 하지만, 잠깐 대학원생 자아를 끄집어내보자. 기본적으로 연구라는 건, '세부 분야'를 정해서 그에 대해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 혹은 '매달릴' 문제를 하나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좁은 분야를 진득하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득하게 한 우물만 판다'는 말 만큼,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말과 상충되는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재작년 고등부 클리닉 때 일이다. 한 학생의 복습테스트 질문을 받아주고, 유사문제를 하나 풀라고 한 상태였다. 아이가 말하길, '무리수는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저는 그림이나 그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클리닉이었기에 나는 어디까지나 그 학생에게 보조강사였다. 오지랖이 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메인 수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 많으신 남자분이셨고 나는 비교적 나이차이가 적게 나는 여대생이라(여학생이었다) 털어놓은 걸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국 '그림도 좋지만, 수학 그림도 그려보면 어때' 정도로 웃어넘겼다. 하지만 학원의 일부를 맡는 입장에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애한테, '어차피 대학 별거 없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연구 자아도 비슷한 것 같다. 자아도 결정을 못 한 채 즐기지만, 연구는 좀 얘기가 다르니까.
2024년,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연합 프로젝트에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인천까지 서너 번 향했었다. 도메인은 전혀 다르다. 나는 Medical 도메인 관련한 연구실 소속인데 해당 프로젝트는 아예 다른 도메인이다. 그럼에도 투자했던 시간과 땀방울이 너무 아까워서, 그리고 아무리 곱씹어도 분명 잠재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서, 연구실과의 미약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쇼부를 봤다. 그렇게 입학 이후에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물과 생성 과정에 대해 논문을 작성했다. 과정을 함께했으니 다른 학생들도 필진에 이름은 넣었지만, 이건 정말 나의 땀방울이라고 생각했다.
*TMI : 필자는 서울에 거주한다. 학사,연구실,학원, 회사 전부 서울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많이 뒤흔들렸다. 오늘, 해당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다른 학생은 아예 다른 도메인으로 틀었고, 그 도메인에서 몇 번 리젝된 후에 어셉되어 카메라레디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젝이 익숙해져 버린 지금, 나는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축하해, 라고 인사를 전하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할 수가 없었다. 나만 과거에 매달리나? 아깝더라도 버렸어야 하는 매몰비용을, 내가 판단을 잘못했던 걸까. 그냥 의료 AI 내에서의 세부분야만 좀 이리저리 돌아볼걸, 하는 아쉬움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자괴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축하의 말을 건네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되풀이됐다. 나는 왜 아직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아깝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는 이 선택이 정말 ‘판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미련이었을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에 너무 충실했던 건 아닐까. 브런치에, '방황을 즐기기로 했다'고 쓰던 것까지도 회의감의 대상이 되었고 애초에 우물의 위치를 잘못 정해 놓고, 깊이만을 미덕처럼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마음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사실은 아무것도 놓고 있지 않았다. short paper이긴 하지만 분명 어셉된 결과가 있었고, 타 학회 SRC(Student research competition)에 3:1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으며, 그 이후의 연장선에서 저널도 준비하고 있다. 매번 방향이 흔들릴 때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듯 다시 실험을 들여다보고 문장을 고치고, 리뷰 코멘트를 하나하나 곱씹는다. 남들이 보기엔 애매한 위치일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분명 지금의 자리에서 해야 할 몫을 다하고 있다는 자각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도, 왜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한 걸까. 혹시 나는 ‘제대로 하고 있음’과 ‘잘하고 있음’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부터인지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근거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성과가 없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아직 이 방황이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두려운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이상하게도, 재작년 클리닉에서 만났던, 상술한 학생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무리수는 도저히 못 해먹겠고, 차라리 그림이나 그리고 싶다고 말하던 그 아이. 그때의 나는 그 말을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고등학교 가기 싫은 학생의 투정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한다고 배워온, 사회가 시키는 것 사이에서, 무엇 하나를 쉽게 놓지 못한 채 서 있던 모습이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제야 ‘진득하게 판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정확한 분야를 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성실한 게 아니라, 이리저리 헤매면서도 완전히 손을 놓지는 않는 사람도 결국은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연구실에서든, 학원에서든, 나는 늘 이해되지 않는 지점 앞에 오래 머무는 편이었다. 아이가 왜 이 문제에서 막히는지, 이 방법이 왜 끝내 납득되지 않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 연구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지, 왜 이걸 하고 싶어하는지. 상황이 죄다 달랐을 뿐 결국은 같은 질문이었다.
아마 방황의 끝에 남는 것은 화려한 성과나 빠른 어셉이 아닐 것이다. 대신, 방향이 불분명한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을 완전히 놓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들이 남을 것이다. 학원에서 학생의 말에 선뜻 답하지 못했던 그날처럼, 나 역시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서 있지만, 적어도 이 방황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는 계속 묻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건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