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보는 나는 수학쌤이겠지만 나에게 애들은 거울 같았다
질문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오래 보다 보면, 그 침묵이 반드시 무지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미 이해가 안 돼서 스스로 곱씹어보고, 질문을 해봤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자신이 기대한 방식은 아니었던 경험을 해본 애들이 많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쪽을 택한 아이들이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입을 닫은 경우들. 슬프지만 이건 눈에 보인다.
재작년 고3이었던 한 학생이 떠오른다. 거의 반포기 상태였다. 문제를 풀 때도, 어차피 틀릴 텐데, 하는 표정이었다. 막힌 게 보이는데도 질문하지 않았고 실전/봉투모의고사가 아니라 그냥 기출문제집만 풀었다.
처음에는 의욕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서 유심히 보다 보니, 그 애는 전혀 게으르지 않았다. 샤프를 움직이다가 멈추는 지점이 늘 비슷했고, 계산을 하다 말고 허공을 보는 시간이 길었다. 막혔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먼저 물었다. 여기가 좀 어려워요? 이 줄에서 헷갈리나요? 처음엔 그냥 괜찮아요, 아니요, 하고 말았지만, 계속해서 말을 걸자 아주 조금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수능 2주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는 게 .. 참 씁쓸하기도 하고 그런 기억으로 남은 애.
수능이 끝나고 다른 쌤들께 듣기로, 그 아이는 낯을 심하게 가렸고, 질문하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영어 수업에서는 더 심했더란다. 그런데 내가 본 그 애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스터디 타임랩스를 찍고, 순공 시간을 재는 앱(열*타)으로 하루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애쓰고 있었다. 대학 입시라는 구조 안에서, 결과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보며, 질문을 안 한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오히려 너무 많이 생각해서,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중등부에서는 비교적 쉽게 깨지는 침묵을 봤다. 상대적으로 어리다 보니 종종 간식을 챙겨주곤 했다. 당시 베이킹에 빠져 있었던지라..나름 정성들여 구운 쿠키나,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애들이 평소 좋아한다고 했던 토핑을 다 다르게 해서 만든 바크초콜릿 같은 것들. 공부랑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의외로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문제를 풀다가 손을 드는 대신, 간식을 먹으면서 슬쩍 물었다. 쌤 이거, 여기서부터 모르겠었어요. 당이 들어가서 머리가 돌아서..도 있겠지만 분위기가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질문해도 괜찮은 사람, 질문해도 평가받거나 놀림받지 않는 공간이라는 신호가 전달되었을 때 아이들은 말을 한다. 질문은, 이해의 문제 이전에, 관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잠깐 다니다가 그만둔 한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연산도 이해도 많이 느렸고, 운동과 덕질에 집중하느라 공부에 투자하는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시험 대비 기간이 아니어도 조금씩은 남겼다. 그 시간엔 온전한 1:1이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분명했기 때문에, 더 쉽게, 더 친숙한 방식으로 설명해주려 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 이름을 넣어서 연립방정식을 설명하고, 숙제를 다 하면 그 멤버 손민수하라고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규직도 아닌데, 오버였던 건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시간만큼은 질문을 했다. 이거 왜 이렇게 돼요? 그 질문은 내용보다도 태도가 달라졌다는 신호였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을 때,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많이 흐릿해진 기억들이지만, 나 역시 질문을 멈춘 적이 있었다. 연구를 하면서, 혹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질문을 할 수는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순간들. 명확한 질문으로 다듬기엔 내 생각이 너무 어지럽지만 마음의 정리는 필요함을 느꼈을 때, 혹은 이런 질문을 하면 내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망설였을 때. 그럴 때 나는 질문 대신 혼자서 계속 돌았다. 뭘 질문해야 할지 몰라 어떻게 질문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료를 더 찾아보고, 이미 한 선택을 다시 합리화하며,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침묵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은 질문을 멈춘다. 그리고 질문을 멈춘 사람들은, 겉보기엔 조용히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가장 깊은 곳에서 방황하는 부류일지 모른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보며 배운 건, 질문을 끌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질문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내가 나 자신에게도 아직 충분히 허락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여전히 질문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애들 옆에서, 그리고 내 삶의 한가운데에서.
사담.
2장은, 학원에서 애들에게 쏟아부은 온갖 감정들, 애들에게 투영된 과거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 같은 학원에서 알바를 하더라도 '나'만 느낄 수 있었을 것들을 진솔하게 다 기록해보려고 했던 장이다. 지금은 가장 오래된 일일지 몰라도 강사를 목표로 하지는 않으니, 언젠가 이 글을 다시 봐도 아 그때 걔, 하고 생각나길 바라며.
여하간 그러다 보니 중간에 에피소드 제목을 바꾸고 2023년 8월에 와서 지금까지 만난 애들을 한 번씩은 떠올리게 된 것 같다. 이 5개 에피의 주인공은 이 아가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학원 챕터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