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미완성을 검증한다는 일

회사 객원연구원으로서의 기록을 남겨보는 장.

by 델리만쥬

* 2장이 학원 이야기였다면, 3장은 회사 연구원으로서의 기록입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한다면, '시제품 제작 및 품질공정' 정도로,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이게 맞는지 틀린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까지를 아우른다.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맞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지, 혹은 아직 “모르겠다”고 말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일에 가깝다.


연구실에서의 검증은 비교적 명확하다. 문제 정의가 있고, 가설이 있고, 실험 설계가 있고, 통계적 기준이 있다. 충분한 데이터와 선행연구를 (좀 많이) 읽다 보면 아이디어가 분명해지고, 결과물도 리젝이든 어셉이든 분명하다. 적어도 기준은 분명하다.


그런데 회사에서의 검증은 다르다.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고,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을 상대로 판단해야 한다. 이 모델이 충분히 쓸 만한지, 이 기능이 실제 사용자에게 의미가 있는지,뭘 넣어야 가장 의미가 있을지, 지금 이 선택이 나중에 발목을 잡지는 않을지.


완성된 것을 검증하는 게 아니라, 완성될 가능성을 검증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내가 경험하는 “검증”은 맞고 틀림을 가르는 행위라기보다는 판단을 유예할 수 있는 이유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좀 더 쓸지,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인지. 하지만 이 판단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것이, 너무 이르면 위험하고, 너무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그 경계에서 해야 하는 말은 대개 확신이 아니라 조건부다. “이 가정이 유지된다면”, “이 상황에서는”, “현 시점에서는”, 같은. 상황을 아는 나에겐 이 말들이 비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감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 아직 확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숨기지 않는 태도. 회사에서의 일은 나에게 일을 연습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판단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이 되는 연습장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틀렸을 때의 책임까지 포함해서,그 판단을 했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완성되지 않은 것을 검증한다는 건 불완전함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안고도 다음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이 쉽지 않은 만큼, 묘하게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확정된 정체성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에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회사에서의 검증은, 기술을, 신제품을 시험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태도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태도를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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