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맞다고 하기까지의 시간

그게 그렇게나 오래 걸려요? 네, 그렇더라구요.

by 델리만쥬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사업화와 품질공정을 맡게 되면서 완성되지 않은 이 물품을 검증하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해질수록 이상하게 더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누군가가, 혹은 내가, “이건 맞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다.


검증은 과정이고, 판단은 선언이다. 과정은 길어질 수 있지만 선언은 한순간에 이루어지고, 그 한마디는 이후의 모든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일은 늘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판단은 언제, 누가 내려야 하는가.


위클리 회의에서 종종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많은 인원도 아니지만, agenda는 정말 끝도 없이 많고 실험 결과가 공유되고, 차주 일정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일단 밀어붙이자”고 말하고, 나는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가는 게 맞을까요?”


그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누군가의 미간엔 주름이 생기고, 그 전까지는 모두가 관찰자였다면, 그 순간부터는 누군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지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틀렸을 경우의 책임까지 함께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맞다’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다. 특히 우리 같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 아직 시장에 던져지지 않은 서비스 앞에서는 더 그렇다.


지금의 판단이 언제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자주 멈칫하게 된다. 분명 데이터를 봤고, 논리를 따라왔고, 이 정도면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막상 “이건 맞습니다”라는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려 하면 망설여진다. 혹시 내가 보지 못한 변수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지금의 판단이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는다.


연구실에서의 판단과 회사에서의 판단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연구에서는 판단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충분한 실험, 충분한 검증, 충분한 레퍼런스를 쌓고, 아니다 싶으면 또 온갖 논문을 찾아본다. ‘아직 모른다’는 상태는 연구에서 비교적 안전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다르다.

‘아직 모른다’는 말이 곧바로 다음 액션을 미룬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준비되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정은 흘러가며,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불완전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의 최선의 판단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판단은 종종 타이밍의 문제다.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더 늦추면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정답’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지금은 이 선택이 가장 덜 틀린 선택’이기 때문에 내려지는 결정들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판단을 내가 내려도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내려서는 안 되는 판단일까. 소속이 애매한 위치에 있다 보니 이 질문은 더 복잡해진다.


완전히 내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닌 상태.
의견은 낼 수 있지만, 대표님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팔로업해 왔지만 최종 결정권자나 소속은 아닌 위치. 그렇다고 업무를, 관련 판단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이 애매한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다' 대신 조건부로 ‘어디까지는 맞다’고 말하는 것.

확신의 영역과 불확실성의 영역을 최대한 분리해서 설명하고,지금 이 판단이 어떤 전제를 깔고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 틀릴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판단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명확한 답을 원한다. “그래서 되는 건가요, 안 되는 건가요?”
하지만 현실의 대부분의 문제는 그 이분법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맞다’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옳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정보와 판단을 종합했을 때, 이 선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으로 말이다.


‘맞다’고 말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조금은 분명해졌다. 그건 결정을 미루고 싶어서라기보다,
그 말이 요구하는 책임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단은 언제 내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아마도 더 이상 미루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일 것이다.


그리고 누가 내려야 하는가. 그 판단의 결과를 가장 오래 견뎌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여전히 판단 앞에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망설임 자체를 무능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망설임이야말로, 내가 이 판단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맞다’고 하기까지의 시간은, 내가 이 일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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