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남아보고 싶어서, 그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어서

by 델리만쥬
기술을 다룬다는 것이 결국 태도의 문제라면, 그 태도를 매일같이 시험하는 자리가 바로 회사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3개 직업을 전전(?)한다고는 하지만, 대학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빽빽할 때가 잦다. 연구 주제를 좁히고, 논문을 쓰고, 세미나를 준비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공간. 굳이 말하자면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나는 하나 더 끌어안고 있다. 론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아직 세상 밖에 나오지 않은 서비스, 명확한 보상이 약속되지 않은 협업, 그리고 매주 시간을 내어 회사로 향하는 루틴. 기본적인 신분은 대학원 소속이기 때문에 회사 가는 날 식사를 사주시는 정도고, 월급은 없다. 그렇기에 이 일을 왜 계속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사실 꽤 자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 자체는 그렇게 숭고하지 않았다. 사회리더멘토링의 멘티로서 제안받은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를 잡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해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하지만 계속하는 이유는 그때와 조금 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은 ‘도움이 된다’거나 ‘경험이 된다’는 말을 넘어,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 묻는 자리로 변해갔다. 무급이라는 조건은 종종 이 선택을 설명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그 조건 덕분에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인지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기술과 맥락이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장 완성되지 않았고, 성공보다는 실패의 책임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실 안에서라면 이 기술은 논문의 형태로 정제되고 말겠지만, 회사 안에서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훨씬 거칠고 현실적인 질문을 받는다. 거칠다는 건..날것이란 뜻.


일단 늘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한다. 이게 문제인지조차 애매한 상태, 그러니까 지금 이걸 하는 게 맞는지, 라는 날것의 질문부터 연구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서비스로는 무리인 선택,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운영으로는 버거운 결정. 그 사이에서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배우고 있다. 무엇을 지금 물어야 하는지, 무엇은 아직 묻지 않아도 되는지, 그리고 어떤 질문은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지. 또 데이터는 부족하고, 기술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확답을 주지 않는다. 이 두 세계를 오가며 나는 기술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층위를 갖고 있는지 배우고 있다.


회사에서 배우는 것들은, 단순히 '실무'로 퉁쳐지는 기술적인 역량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판단의 무게를 배우고 있다. 이 정도 완성도가 어느 수준인지, 얼마나 더 다듬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순간들. 연구자라면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잠시 미뤄둘 수 있는 문제들이, 회사에서는 곧바로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 선택이 만들어낼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망설이지만, 동시에 도망치지는 않으려 애쓰고 있다.


또 나는 여기서 속도의 감각을 배우고 있다.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해서 반드시 안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연구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쓰는 것이 미덕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시간 자체가 비용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를 고민으로 허용할 것인지, 언제부터는 불완전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꽤나 고독한 학습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과도하게 책임을 떠안는지, 어떤 순간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지. 대학교 졸업하기까지의 24년간 몰랐던, 또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 안에만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나의 면들이, 회사라는 또 다른 역할 안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 피곤하고 감당하기 버겁지만, 적어도 나를 납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언젠가 ‘진득하게 하나를 해봤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가능성을 탐색해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으려면, 뭔가 한 번쯤은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느낀다. 이 기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한 잠재력이 허상이었는지 아니면 실제였는지. 그 답을 남의 결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과 선택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고 이를 위해 달려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일을 한다. 적어도 이 선택을 가볍게 하고 있지는 않다는 감각만은 분명하기에.

무급으로 일한다는 사실은, 가끔씩은 지치게 한다. 시간을 쥐어짜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논문 마감과 랩 미팅, 수업 준비와 학원 일을 마치면 남는 에너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한두 번은 회사에 가고, 회의를 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문서화한다. 이 일이 당장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 과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감각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쉽게 설명되지 않는 길을 굳이 걷는 이유다.


지금의 나는 완성된 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일을 통해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질문을 쉽게 놓아버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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