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기술을 다룬다는 것

기술의 발전 속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될까.

by 델리만쥬

무슨 일 하세요, 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 상황에 따라 메인이 되는 일을 자주 소개한다. 가령 학원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오전엔 연구실 정도 가요, 라고 말을 하듯 말이다. 처음부터 3job이에요, 라고 하진 않는다.


그러면 '그럼 공대 쪽 업무는 다 하시는 건가요?" 같은, 비전공자 입장에서 나를 최대한 이해한 말이 나온다. 그 후엔 간단히 말해서, 품질공정, 알고리즘이나 모델을 다룬다,고 부연 설명을 한다. 강사 직업병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술을 다룬다,는 말은 마치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오고, 파라미터를 조정하면 성능이 달라지고, 오류는 수정하면 사라질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런 장면과는 조금 다르다. 기술을 손에 쥐고 있다기보다는, 기술을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선택하고, 미루고, 감당하고, 관리하는 쪽에 가깝다.


회사에서의 일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이 기술이 지금 이 서비스에 맞는가, 이 수준의 정확도로 출시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당장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음 단계를 약속할 수 있는가. 질문들은 전부 기술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어디까지를 감수할 것인지,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기술은 그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선택지를 넓히거나, 혹은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기술을 다룬다는 말 속에는 묘한 통제의 환상이 섞여 있다. 내가 이 기술을 이해하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기술을 조금이라도 깊이 들여다볼수록, 통제할 수 있는 영역보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데이터는 항상 불완전하고, 환경은 예측과 다르게 움직이며, 사용자는 개발자의 의도를 정직하게 따라주지 않는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내가 어떤 제품을 만들어서, 이 제품이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주장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실험을 한다. 그렇다면, 이 실험이 정말 이 근거가 되는 실험이 맞는지, 맞다면 이 실험을 통해 얻는 근거가 내가 의도한 데이터가 맞는지, 차이가 있다면 왜 발생하는지, 등등 검증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룬다’는 말을 쓴다. 아마도 그 말은 통제에 대한 선언이라기보다는, 불확실성을 끌어안겠다는 태도에 더 가까운 말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기술을 다룬다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판단의 범위를 다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 무엇을 사람의 판단에 남겨둘 것인가. 어디까지를 시스템의 책임으로 둘 것인가, 어디부터를 운영의 문제로 넘길 것인가. 이 질문들은 코드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그 가능성을 선택으로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기술을 다룬다는 말이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은, 기술이 잘 작동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어긋날 때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수치가 애매한 구간에 걸쳐 있을 때, 이 상태로 계속 가도 되는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때. 그때 비로소 기술을 ‘설명’해야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 한계가 구조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지금의 실패가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 실패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무작위로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다는 뜻에 가깝다. 그렇게 매뉴얼을 만들어 가고 SOP 문서를 작성하며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의 '전체 정의'다.


요즘처럼 하루에도 논문이 몇천 편 쏟아지는 세상 속, 점점 기술을 다룬다는 말의 무게가, 성능이나 속도가 아니라 책임의 위치에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기술을 선택한 이유, 이 시점에 이 결정을 내린 이유,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지. 기술은 결정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결정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판단을 미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기술을 다루는 일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불확실성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를 얼마나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을 언제까지 붙잡을 것인지. 성급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 태도, 그렇다고 영원히 판단을 유예하지도 않는 태도. 그 균형을 잡는 일이야말로 기술을 다룬다는 말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선택지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럴수록 기술을 다룬다는 말은 점점 덜 기술적인 의미를 띤다. 그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로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설명하고 견디겠다는 자세의 문제다. 그 자세를 완전히 갖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기술을 다룬다는 말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손에 쥐는 능력이 아니라,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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