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법을 배울 필요는 분명히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멈추는 법을 잘 몰랐다.
어쩌면 멈춰야 한다는 신호를, 내 몸이 계속 보내는 그 신호를 계속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쉬는 건 늘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나는 언제나 여유 없는 쪽에 나 자신을 놓아두었다. 계속 뭔가 활동을 찾아다녔고 뭐 하나라도 내 이력서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성실함이라기보다는, 멈춤을 모른 채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다.
2022년 여름, 나는 미국 UC 버클리로의 단기 파견을 통해, 짧지만 강렬한 자유를 맛봤다. 낯선 환경, 다른 리듬, 그리고 ‘당장 잘 해내야 할 것’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상태. 하루쯤은 자체 휴강 때리고 로컬 푸드(?) 먹으러 다녀오고, 온 김에 주말을 이용해 잠시 여행 갔다오고. 그런 기간은 분명 나에게 활력을 줬지만, 동시에 위험한 착각도 하나 남겼다. 나는 힐링 제대로 했고 그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 감각을 붙잡은 채 돌아와 맞이한 2022년 2학기는, 그래서 더 가혹했다. 갑작스럽게 무너졌다. 여유를 맛보고 나니 이전과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태였고, 그만큼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결국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이 한번 온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때 나는 ‘쉬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 휴식은 충분히 회복적이지 못했다. 몸이 멈추면 생각이 달리고, 생각이 멈추면 몸이 달렸다. 그렇게 쉬는 동안에도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뭔가를 했다. 남들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선택이 나를 더 약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쉬면서도 쉬지 못한 셈이다.
복학한 지 반년이 채 안 되어 실신을 했다. 이건 ‘그때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분명 연결된 지점은 있었다. 나는 여전히 회복을 ‘관리’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잠을 잘 자고, 약속을 줄이고, 영양제도 먹고, 컨디션을 조절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겉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정말로 배워야 했던 건, 쉬는 방식 자체였다.
쉬는 건 단순히 멈추는 게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나는 늘 빠른 결정을 잘하고, 그에 따른 실행력이 뒤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상황을 분석하고, 가능성을 따지고, 가장 그럴듯한 선택지를 고르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 알게 됐다. 어떤 결정은 빠를수록 더 깊은 곳으로 몰아넣는다는 걸, 특히 나 자신에 대한 판단만큼은 더욱 그렇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쉬는 것도 배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휴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무작정 손을 놓고 냅다 술 마시면서 노는 게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과부하였는지를 돌아보고,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욕심이었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라는 나만의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고 다른 일을 하지 말아보자'는 상태를 견디는 연습. 그게 필요했다.
더 잘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시작된 연습. 그리고 그 멈춤은,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계기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 멈춤 이후에 만들어진 선택들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정했는지, 버틴다는 말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그리고 결정을 유예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이 장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가장 처음의 멈춤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