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법을 모르는 채로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다
러닝을 하다 보면, 보통 4~5km만 되어도 숨차하면서 멈추시는 분들이 많다. 이때 정말 많은 경험자들은 "멈추면 안 됩니다. 느려도 괜찮으니 멈추지 않고 오래 달리는 것에 집중"하라고들 조언한다. 여기서부터는 어쩌면 이런 러닝의 법칙이 적용되는 내 기록들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던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살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만의 규칙을 정했다. 감정에 기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의지만으로는 버티지 못함을 인정해서.
나는 원래 나를 꽤 잘 관리한다고 생각했다. 일정은 촘촘했고, 목표는 분명했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손에 잡혔다. 바쁘게 살면서도 못하는 일 하나 없었고 나름대로 유의미한 경험도 쌓여 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안에 ‘나’는 없었다는 것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늘 앞섰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생각은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는 늘 논리로 덮어버렸다. “이 정도는 다들 한다.” “지금 쉬면 뒤처진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버티다가, 내 몸은 멈춰버렸던 것을, 나는 기억해야 했다. 그래서 다짐이 아닌 구조를 잡고자 했다.
첫 번째로 정한 규칙은, 큰 결정은 하루를 넘겨서 하자는 것이었다. 감정을 아무리 다스린다 해도 가장 격해진 순간에 내린 판단은 대개 극단적이었다.
지하철에서 숨이 안 쉬어져 실신했던 날 이후, 나는 남은 학기 내내 휴학을 고민했다. 그날 이후로 강의실이 낯설어졌다. 분명 같은 자리, 같은 교수님의 목소리인데도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노트북은 켜 두었지만 한 줄도 적지 못했고, 공모전 팀원들이 보낸 카톡이 제대로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도서관 열람실에 가면 책을 펴 둔 채 몇 시간을 앉아만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수업을 무단으로 빠지고, 도서관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를 반복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나는 무휴학, straight 졸업만을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경로가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정작 몸이 먼저 멈춰버리자, 나는 그 멈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휴학을 하면 공백기를 뭐라고 설명하지? 그 시간엔 뭘 해야 하지? 그런 질문을 붙들고 있었지만, 사실 더 솔직한 마음은 따로 있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 아무 설명도 계획도 없이, 그냥 멈추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도 빠져나간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최소 하루, 가능하면 이틀. 오늘의 감정이 내 인생 전체를 대표하지 않도록. 냅다 미루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라,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두 번째 규칙은, 일의 양이 아니라 에너지의 잔량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다. 예전의 나는 일정표가 비어 있으면 불안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이어리든 투두메이트든, 빈칸을 보면 채웠다. 강의 준비, 학부연구생(이제는 연구), 알바, 회사 일, 멘토링 등의 대외활동까지. 문제는 일정이 아니라 상태였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 이제는 묻는다.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해도 괜찮은가?”라고. 이 질문 하나가 나를 몇 번이나 구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내가 비어버리지는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세 번째 규칙은,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멈추는 연습이었다. 나는 끝까지 해내고 뭔가 성과를 남기는 사람이고 싶었다. 초안은 항상 고쳐야 했고, 발표 자료는 끝없이 다듬어야 했으며,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는 절대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을 기준으로 삼으면 멈출 수 있는 지점이 없다. 그래서 나는 80%에서 닫는 연습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선언하는 연습.
4학년 2학기 때 들었던 의생명통계학 과목의 기말 캡스톤 발표를 준비하던 날이었다. 말이 캡스톤이지 소규모 과목이라 1인 1프로젝트였고, 이 플젝을 위해 자료를 분석하고 준비하면서 한 카페에서 점심, 저녁을 다 주문해 먹을 만큼 오래 있었다. 발표자료와 대본, 심지어 분석도 좀더 해봐? 하면서 수정을 거듭하다가, 폐점 1시간 전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고 멈추었다. 당장 다음 날 제출하는 것도 아니었고.
원래대로라면 24시 스터디카페를 가서 밤을 새서라도 더 했겠지만, 이날은 집에 가서 푹 쉬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기까지, '진짜 이래도 되나' 싶어 충격이면서도 동시에 작은 해방이었다. 완벽하지 않았는데 세상도 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 TMI : 필자는 휴학을 1학기만 했었다. 그래서 엇학기로 다니다가, 4학년 1년에 추가학기까지 총 3학기를 더 다니고 졸업했다.
네 번째 규칙은, 나를 평가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이었다. “왜 이것밖에 못 했지”라는 문장은 나의 기본 설정에 가까웠다. 비슷한 분야에서, 혹은 또래가 어떤 성과를 냈다 하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 문장은 나를 밀어붙일 뿐, 지탱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내가 한 일을 남겼다. 투두메이트에 카테고리별로 오늘은 뭘 했고, 설령 완료된 일이 아니더라도 어느 프로세스까진 진행되었다던가 뭘 더 보완하면 끝날 것 같다 등의 메모를 남겼다. 그렇게 적어보니,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언어가 바뀌자, 나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상대를 믿는 연습을 했다. 예전의 나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K-장녀라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함을 드러내는 건 패배자처럼, 결국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신 사건과 휴학 이후, 나는 어차피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 도움을 요청하는 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버티는 것이 강함이라면, 함께 버티는 건 더 큰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대를 믿는 연습을 했다. 상대도 나만큼,어쩌면 더 열심히 할 텐데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제가 좀 수정해도 될까요?,하면서 함부로 일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니다 싶을 때는 논외지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불안해하고, 때때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신호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고, 멈춰야 할 때를 조금 더 일찍 감지하고, 언제 쉬어야 할지를 인지하게 되었다. 회복은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 아주 작은 조정들의 반복이었다.
나는 강해진 게 아니다. 대신 나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고, 나에게 필요한 멈춤을 인정하고, 나를 지키기 위한 구조를 세웠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이라서 무너질 수 있는 나를 인정하기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이 규칙들은 앞으로도 계속 수정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버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살아남으려면, 나를 다루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