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계속 살아가려 하는가,에 대한 나만의 내적 동기들.
한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한 각오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절박함이나 눈물, 혹은 누군가를 향한 책임감 같은 것. 왜, 클리셰처럼, '복수하기 전엔 눈 못 감는다',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보면, 내가 버티고 있던 시기들은 오히려 가장 욕심이 많았던 때였다.
휴학으로 시작했던 2023년과 졸업준비, 그리고 대학원 입시로 바빴던 2024년으로 돌아가보자.
특히 2024년 상반기는 지금 생각해도 숨이 찬다. 한 학기에 올전공이었던 건 물론(2024년 상반기는 심지어 7전공이었다), 공모전(해커톤)과 특강 같은 것도 쫌쫌따리 전부 지원하고 준비하고 했었다. 대학원 입시를 앞두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 어쩌면 앞서가고 싶었던 욕심. 논문을 쓰겠다고 붙들고 앉아 있던 2025년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안 하면 뒤처진다’는 생각, 남들보다 늦지 않으려는 마음, 인정욕구가, 나를 계속 뛰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 내가 마음을 더 많이 쏟은 건 스펙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성은 스펙을 향했지만 마음은 뭔가 사람을 향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멘토링(송파)을 통해 만난 아이들, 학원(은평)에서 만난 아이들. 서울의 서로 다른 끝자락에서,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멘토링에서는 공부 두 시간 하고 끝이 아니라,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아이돌, 연애 이야기까지 들었다. 우리 때는 이랬는데 요즘은 그렇군요, 같은 소소한 대화들. 나는 화두를 던지고 간간이 내 얘기를 꺼냈지만, 경청이 말보다 길었다. 조금 풀렸다 싶으면, 그때 공부를 조금 곁들이는 정도였다.
학원에서는 조금 달랐다. 공부가 메인이었으니까. 대신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떠먹인다는 말이 스스로 떠오를 만큼. 일단 이해시키는 데 집중했다. 내 말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흐려질 수 있기에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면서도, 아이가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좀 맹하게 생겼는지, 말투가 둥근 탓인지 아이들은 비교적 편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학생으로서, 선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던 날. 멘티 중 하나가, 보넥도 이야기를 한참 하다 “쌤이 진짜 제일 편해요”라고 했다. 그 아이가 나에게 보이넥스트도어를 영업해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숨이 놓였다.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시간이 허공에 흩어지는 건 아니구나. 스펙과는 다른 종류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던 시간들이 잠시 정리되는 느낌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편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조금 더 버텨보고 싶어졌다.
그게 내가 처음 자각한 ‘살고자 하는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내가 맡은 시간과 역할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
2025년 6월, 정말 아무 예고 없이 쓰러졌다.
하필이면 화요일이었다-학원 수업이 있는 날. 졸음과 몽롱함 사이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책임의식이 제 역할을 다해줬다. 급히 원장님께 상황설명을 드리고, 아이들에게도 사과와 함께 언제 보충할지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 아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쌤 죽으면 안 돼요. 저희 가르치셔야죠.”
어떻게 보면 웃픈, 짧은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커리어와 성취에 대한 욕심을 살고자 하는 의지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더 잘해야 한다, 더 많이 해야 한다, 더 빠르게 가야 한다. 그런데 쓰러지고 나서 알았다. 내가 붙들고 있어야 할 건 성과가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완성하는 일이었다는 걸. 하루하루가 성과라는 게 체감되기 시작했다.
나는, 학원에서 애들이 투자하는 시간의 책임을 맡았다. 내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날은 유난히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꿨다. 오늘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에 집중하자고.
살고자 하는 의지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쪽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약속한 시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나를 믿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성의 있게 답하고 싶다는 태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그 자리에 돌아가고 싶다는 선택.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여전히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더 많이”가 아니라 “계속”에 가깝다는 걸, 단거리 질주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걸.
계속 수업에 가는 것.
계속 논문을 고치는 것.
계속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그때 끝까지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쌤이 제일 편해요”라는 말 한마디와 “저희 가르치셔야죠”라는 답장이었다. 그 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편한 어른 혹은 사람이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가 어쩌면 비즈니스와 스펙으로, 사회로 나아가면 돈으로 귀결되는 세상 속에, 그냥 한 명쯤 순수하게 대할 수 있는, 편한 사람,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건 책임감만은 아니었다는 걸.
나는 사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짱박힌 돌이 아님에도 버텨내고 싶어서 그렇게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때도, 이상하게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수업을 그만두지도, 논문을 던져버리지도, 사람들과의 연결을 스스로 끊어버리지도 않았다.
왜였을까, 지금 그 이유를 곱씹어 보면, 아마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남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라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쌤이 제일 편해요.”
“저희 가르치셔야죠.”
그 말들은 나에게 있어, 내가 아직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수상이든 어셉이든 그런 결과는, 저런 말들에 비해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늦고 그걸 증거로 인식하기엔 시간이 참 느리니까.
살고자 하는 의지는 거창한 꿈이 아니다. 더 잘 되겠다는 야망도 아니다.
그저, 이 연결을 완전히 끊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 하나쯤은 남겨두겠다는, 4-02에서 내가 배웠던 태도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대단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연결을 놓지 않기 위해.
그게 지금 내가 이해하는, 나만의 ‘살고자 하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