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버틴다는 말의 오해

버틴다는 말이, 때로는 사람을 더 고립시키는 말이 되기도 한다

by 델리만쥬
학창 시절부터, 대학교 1,2학년 때까지.이때로 들어가보자.

학창 시절, 대치동 같은 곳은 아니지만 주변지역에 비해선 교육열 높은 동네에서 자랐고, 자사고를 졸업했다. 나름대로 공부 좀 하는 애 축에 들었고, 어딜 가든, 학교든 학원이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성실'이라는 말 안에는, 이거 했으니까 이제 선행을 나가다가 기말 준비해야지, 또 방학 땐 뭔가 또 특강으로 일상을 채워가야지, 같은 '다음 스텝'이 채워져 있었다.


이 평가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학과대표를 2년간 맡았고, 온라인으로나마 진행하는 학과 간담회나 행사를 모두 주관했으며, 코로나 시국이 끝나기도 전 2학년 2학기 때 첫 인턴을 할 만큼 뭔가 계속 달리고 있었다. 멈추는 것은 늘 나태함과, 또 장기적인 실패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성실이 내 장점이자 차별점이라고 늘 자부해 왔다. 어떻게 보면 학창시절부터 대학교 초창기 시절까지

성실함 = 멈추지 않는 능력

책임감 = 무너지지 않는 능력

저렇게 배워 온 셈이다.


*TMI: 필자는 대학교 20학번, 그 유명한 코로나 학번이다.


그 결과,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앉아 있고, 조금 더 늦게까지 남아 있고, 조금 더 많은 역할을 맡는 사람. 성실하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일단 오늘 해야 할 일은 끝내는 사람.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버틴다’는 말이 이상하게 불편해졌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엔 3잡을 전전하고 있으니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고 다음 날 중요한 위클리 미팅이 있었는데도 자료를 최소한으로만 정리하고, 괜시레 누워서 블로그 이웃 소식만 조금 보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날도 있었다. 유튜브를 본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통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그래도 버텨야지.” 라 거의 주문을 걸었다.


논문 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알림이 뜬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미리보기로 몇 줄만 확인하고는 창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리젝 가능성이 더 높다지만, 결과를 제대로 읽는 순간 무언가가 확정될 것 같아서. 그 확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몇 시간을 미루다가 겨우 메일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 정도는 버텨야지.”


일시적 저혈압으로 인한 실신(6월 사건) 이후에는 더 그랬다. 건강이라는, 너무나 합당한 이유가 생겼다. 그래서 집에 오면 할 일을 제쳐두고 그냥 누워 있었다. 주말 하루를 통째로 침대에서 보내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죄책감에 견디지 못했을 시간들을, 이제는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또 마음 한편에서는 “이러다 뒤처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조금은 더 버텨야 하는 거 아니야?”하는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그때까지도, 버틴다는 말을,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
힘들지 않은 사람처럼 기능하는 것.
쉬고 싶어도 일단 해내는 것.

그게 버티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연애에 대해서도 비슷한 모순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 ‘자기야’ 같은 호칭을 견딜 자신은 없고, 감정노동을 더 얹을 어떠한 여력도 없으면서, 그저 편하게 기대고 싶은 마음. 그걸 두고 나는 한동안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모순이라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버티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 계속 기능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


버틴다는 말은 미덕처럼 자주 쓰인다. “조금만 더 버텨”, “다들 그렇게 버틴다”, “지금만 넘기면 돼.” 그 말은 겉으로 보면 위로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는 말이 되기도 한다. 구조도 환경도 그대로인데, 사람에게만 더 오래 견디라고 요구하는 말.


나도 나 자신에게 그 말을 수없이 해왔다.

4-03에서 언급했던 2023년과 2024년, 한 학기에 전공을 꽉꽉 채워 듣고 대학원 입시를 앞두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려고 애쓰던 시간들. 그 와중에도 멘토링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서울 양끝을 오가며 역할을 이어가던 날들. 열심이라 부르던 그 시절, 나는 사실 꽤 오래 버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버틴다는 건,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졌을 때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를 통째로 누워 보냈어도, 그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수업에 가는 것. 리젝 메일을 한참 미뤘다가도 결국 열어보는 것. 미팅 자료를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늦게라도 보완책을 마련해 책임을 다하고 차질을 빚지 않는 것.


그러니까, 나는 오래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이 차이를 깨닫고 나서야 ‘버틴다’는 말이 조금 덜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버틴다는 게 무조건 강해지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약해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학생들을 떠올려보면 더 분명해진다.

브런치에 작성했던 아가들을 생각해 본다. 무리수 단원을 세 번씩 반복하던 아이, 질문을 못 하다가 수능 직전에야 겨우 입을 떼던 아이, 목표 점수에 1점 모자라 힘이 빠졌던 아이. 그 아이들도 매일같이 강해진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후퇴했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못 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다. 똑같이, 다시 학원에 왔고, 또 문제를 풀었다. 그게 그 아이들 나름대로의 ‘버팀’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아마 그런 식으로 버티고 있다.


더 이상 나는 버틴다는 말을, 이를 악물고 참는 일로만 쓰고 싶지 않다. 대신 '무너질 수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하고 싶다.
지치지만,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는 것.
잠시 멈춰도, 다시 움직일 여지를 남겨두는 것.


어쩌면 나는 그 여지를 지키기 위해 결정을 유예해왔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포기하지도, 완전히 단정 짓지도 않은 채로. 그 애매한 상태 덕분에, 나는 여러 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버틴다는 말의 오해를 조금씩 벗겨내고 나니, 나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얼마나 오래 견뎠는지가 아니라,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왔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꽤 여러 번,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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