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 결정 유예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나를 알아가면 되겠지.

by 델리만쥬

1-01, 이 시리즈?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 원래 에필로그에 넣으려고 했던 말로 시작하여 수미상관을 노려보겠다(?)고 했었다. 다만, 너무 똑같은 문장의 반복은 브런치에 적합할 것 같지 않아서, 의미를 조금 확장해 보려고 한다. 1화에선 "그때의 질문"으로 끝냈다면, 지금은 그 질문을 들고 "여기까지 온 사람"으로 끝내는 것.


결정을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는 건, 내가 아직 답을 모른다는 고백이 아니다. 외려 그 반대다 - 그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는 증거에 가깝다.


처음 이사를 갔던 해, 처음 보는 전공을 붙들고, 코로나로 연기된 개강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녹화강의를 들으며 나는 계속 스스로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은 그때도 불안이었고,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그때의 질문은 “대학생활 동안, 빨리 정답을 내놓으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의 질문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고 묻는 것에 가깝다.


나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물론 하는 일 모두에 정말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연구가 평생의 일이 될지, 지금 붙잡고 있는 역할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이 삶의 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나는 불확실함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쓰러졌던 이후에도 다시 강의실에 갔고, 결과 메일을 미루다가도 결국 열었고, 논문이 고쳐지지 않는 밤에도 파일을 닫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은 건 아니다. 부끄럽지만, 가끔은 미뤘고, 회피했고,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이게 내가 유예를 택하는 방식이다.

결정을 미룬다는 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결정이 아니었을 뿐 무언가 계속 선택하기는 해 왔다. 다만, 그 방향성이 과하게 나를 소모하지 않는 쪽으로, 건강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조금 느리더라도 이해하고 움직이는 쪽으로, 이렇게 수식어를 하나씩 달게 된 것 뿐이다.


유예는 공백이 아니라, 방향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시간이었다.


1화에서 나는, 아직 답은 없다고.

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건 아니라고, 그 정도면 나쁘지 않게 사는 것 아니냐, 고 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조금은 공유한 지금의 나는 , 그 문장을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답을 모른 채로도 책임을 지는 쪽을, 방향을 확신하지 못했음에도 사람을 붙드는 쪽을 택해왔고, 그렇게 불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방식을 배워왔다고.


그래서 이제 질문은, 조금 바뀐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가 아니라 “이 질문을 붙들고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겠는가?”, 로 말이다.


나는 아직도 결정을 유예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회피가 아니다. 이 질문과 함께 논문을 쓰고 고치고, 애들을 가르치고, 연구계획서를 쓰고, 다시 선택한다.


누군가는 조금은 투박하고 약간은 두서없는 이 글들을 보고,

그래서 이 사람은 언제 결정을 하겠다는 걸까.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럴지도 모르겠다.

몇 화에 걸쳐 연구 이야기를 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아프고 무너졌던 이야기를 꺼내고, 아이들의 말을 붙들고, 버틴다는 말의 오해를 풀어놓더니,

정작 “그래서 뭐가 답이냐”는 질문에는 끝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하나의 문장으로 삶을 요약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정을 미뤄도 괜찮다”가 아니다. 결정을 유예한 채로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 확신이 없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방향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아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 또한 언젠가 결정을 하게 될 거다.
연구를 더 하든, 혹은 갑자기 강사로 방향을 틀겠다든, 아니면 지금 회사에 정규직으로 가겠다든. 다만, 어떤 형태로든 이름 붙일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불안 때문에 서두른 선택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잘 아는 상태에서 내릴 것이다.


싱거울지도 모르지만 이 글의 결론은 거창한 진로 선언도, 드라마틱한 전환도 아니다.

나는 아직도 질문을 들고 산다. 하지만 이 질문은 나를 흔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붙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유예 중인 채로 살아간다.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결정하지도, 나를 소모하는 방향으로 섣불리 정착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 정도면, 여기까지의 나는 꽤 성실하게 살아온 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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