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깜깜한 40대들에게
요즘 꽂혀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주기적으로 묻곤 하는데, 40대 중반인 요즘은 그 빈도수가 더 잦아진다.
내 삶에 큰 불만이 있어서도, 어떤 특별한 이슈가 있어서도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매일 삶을 살아내기 때문에 물을 수밖에 없는 필수불가결한 질문인 것이다.
영어미술 홈스쿨을 처음 오픈했을 때, 지역 내 거의 처음인 이 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을 다 가진듯했다.
영어만, 미술만 따로 커리어를 삼았을 때 뭔가 부족했던 2%. 그 틈새가 완벽히 메워진 듯했다.
홈스쿨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지 8년 차.
3년 전 근교로 이사를 온 것 빼고는 변한 것이 없는 지금. 성장에 목말라 있는 요즘이다.
난 항상 성장에 목마른 것 같다.
"내가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뭔지 항상 정의하려 애썼다.
그 정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헤대며, 나를 수시로 괴롭혔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어도,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으면 그것이 별로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 학창 시절 오랜 상대평가로 인한 결과이지 않을까.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도 많고, 나는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을 쳐서 겨우 해낸 일을 너무나도 쉽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지고 좌절한다.
그럴 땐 남편을 본다. 남편에게 묻는다. 그가 하는 말, 행동에 주목한다.
그의 인생의 기준은 절대평가인 것 같다.
그 옆에 잘난 누군가가 있어도, 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잘난 누군가를 축하해 준다.
난 이 생소한 평가 법을 20대 후반에야 배웠다.
미국 유학 당시 성적 평가는 절대평가였다. 나도 잘해도, 옆 친구가 잘해도 괜찮았다.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와만 경쟁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자꾸 그걸 잊는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고, 미술 전공자도 많으며, 영어 + 미술 두 가지를 전공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각 개인의 서사는 모두 다 다르다. 같은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가진 과거의 경험과 오늘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서 나만의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다.
1등일 수도 없고, 1등일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나만의 서사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만 내가 닿으면 된다.
[마흔, 정신과 다니며 청소합니다]란 책을 읽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대표이사에게 환멸을 느껴 퇴사를 했고, 6년간 카페와 수제 펍을 운영하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다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했고 청소 업을 시작했다.
청소란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진입장벽이 매우 낮고 경쟁도 치열하다고.
난 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과감히 뛰어드는 용기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대단해 보였다.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뭐라도 해야겠는데, 당장 눈에 들어온 게 청소업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청소 일이 아니어도, 그 무엇이라도 괜찮았을 거라고.
지금은 청소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할 것이라는 계획도 없다고.
단지, 지금, 오늘 그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고.
그는 "남과 다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먼지를 깨끗이 쓸고 닦고, 남들보다 더 성실히 청소할 뿐이라고.
"그 무엇이어도 상관없다."라는 이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40대 중반, 참 어려운 나이다.
뭐든지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20대.
뭔가 이루어가고 성장가도를 달리는 30대.
40대는 어중간한 나이인 것 같다.
안정적이지만, 성장하기엔 두려운 그런 나이.
앞이 깜깜하고 답답한 그런 나이.
그런 나이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청소 일을 시작한 그의 모습이 많이 위로가 됐다.
앞이 깜깜해도, 성장하는 것 같지 않아 조급하고 답답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1등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오늘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의 모습이 또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져서 나만의 서사를 만들거니까.
그 모습을 지금은 모른다 할지라도 괜찮다.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나만의 서사가 만들어질 거라는 건 단순한 진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