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사회 생존기 (15 - 2025, 봄)
1) 게으른 대문자 P의 전략적 사고
카이스트 MBA 서류 평가는 3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진다. 학부 성적, 영어 성적, 에세이.
학부 성적은 고정이었다. 재수강을 10개씩이나 해서 간신히 3.06을 맞춰 졸업했던 나는, 학부 성적이 다시 필요한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바꿀 수 없는 건 과감히 포기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에세이는 자신 있었다. 10년 넘게 말밥/글밥으로 먹고살았는데, 잘 나오겠지. 남은 건 영어 성적뿐. 가장 쉬운 토익을 보자. 10년 만에 본 토익은, 정확히 200점이나 낮게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류를 준비하던 시기엔 몰려드는 이별수로 정신이 없었던지라, 공부할 시간은 없었다. 오롯이 실전 감각으로만 올리는 수밖에. 서류 마감 날까지 총 4번의 기회를 모두 접수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전략의 연속이었다. 게으른 성향 덕분에 같은 에너지를 쓰고도 훨씬 좋은 결과를 뽑아내기를 바랐기 때문이리라. 2025년 봄학기, 전공필수인 경영전략 수업에서는 이런 내 성향이 빛을 발했다. 협상론에 이어 두 번째 A+을 받은 수업이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없이 발표와 과제로만 이루어졌던 과목. 과제 문항 중 하나가 지금까지 내린 의사결정 가운데 가장 전략적으로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사례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외고에 진학한 후 첫 중간고사에서 뒤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성적을 받았다. 자퇴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입학 직후 치른 반 편성 고사에서는 반 2등을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나는 시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거나 없는 경우에는 학업 성과를 잘 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내신 경쟁에서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3년 간 수능 공부에 올인하며 정시 중심의 입시 전략으로 방향을 정했다.
다만, 내신을 완전히 포기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방어할 방법을 고민했다. 윤리/한자/중국어 등 경쟁이 덜한 과목, 불어/수학 등 타 학생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과목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그 결과 최소한의 내신 관리로 수능 과목에 장기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불리한 환경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도출하고 실행했다. 이후 삶에서도 이런 사고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업무를 진행하거나 학업/커리어 의사결정을 할 때도 항상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편이다.
창업을 하겠다, 내 일을 하겠다는 결심도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10년 전, 처음 취업 시장에 뛰어들 때는 못 했던 생각이다. 왜 기업은 나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불만만 쌓여갔다. 10년 넘게 일을 해 온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기업 인사팀이 일을 너무 잘했던 거다. "지금요? 제가요? 왜요?" 질문봇이던 나는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일을 하는 기업형 인재가 절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때 업무 효율성이 월등히 높아지는 창업형 인재라고나 할까. 나도 몰랐던 나의 성향을 일찌감치 파악한 기업의 인사팀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산업군 내에서는 이직의 기회가 많았다. 10년 넘게 한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항상 원하는 연봉 상승률을 제안받지는 못했다. 초봉이 이토록 발목을 잡을 줄이야. 오히려 스테이를 결정하면 제안받은 상승률보다 높게 연봉이 상승되는 경우도 있었다. MBA 수업을 들으면서 '지는 산업군'인 드라마를 떠나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다른 산업으로 이직하기엔 내 매력도가 높지 않았다. 산업을 바꾸려면 최소한 직무는 같아야 했는데, 드라마 기획이란 직무는 산업을 떠나면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직은 답이 아니었다.
2) 자꾸만 창업을 부추기는 카이스트
카이스트를 선택한 건 사실 소거법이었다. 신촌에서 학부 생활을 했던 내게는 푸른 피가 흐르는데, 고대 MBA를 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MBA는 동대학원은 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들어 연대 MBA도 싫었다. 서울대는 전일제라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카이스트에 왔다.
그런데 와서 보니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카이스트에는 창업 관련 지원이 정말 많았던 것이다. 창업 특화 전공이 따로 있어 관련 수업이 많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와 대회도 꽤나 쏠쏠했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창업 관련 동아리와 소모임도 여럿이었다.
PMBA 전공은 재무, 조직&전략, 마케팅 세 가지 세부 트랙 이수가 가능했다. 매 학기 권장 이수 학점보다 초과하여 수업을 들었던 나는 마음만 먹으면 세 트랙 모두 이수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길을 가기로 했다. 바로 창업 트랙. PMBA 전공 수업 외에 내가 선택한 수업은 '창업과 법'과 '스타트업을 위한 디자인 싱킹'이었다. 그렇게 2025년 봄학기도 9학점을 듣기로 했다.
'창업과 법' 교수님은 첫인상이 매우 강렬했다. 경영학 박사에 법학 박사까지 취득하신 분으로, 엑싯을 크게 하셔 수업을 업이 아닌 사회 공헌 느낌으로 한다고 하셨다. 전달력도 좋아 말씀하시는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문제는 교수님께서 직접 강의를 하신 게 단 이틀뿐이었다는 것이다. 팀 과제는 교수님 대신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아무리 열심히 조사를 한다 한들, 교수님만 할까. 강의를 해본 적이 없으니 스크립트를 읽는 수준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교수님이 학생들의 발표 중간중간 끼어들어 흐름이 자꾸 끊겼다. 너무나 유익한 수업 내용인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드롭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렇게 첫 B+를 받고 말았다.
임팩트 MBA 전공은 졸업 요건으로 반드시 창업을 해야 할 만큼, 창업 관련 수업이 많다. 그중 '스타트업을 위한 디자인 싱킹'은 스탠퍼드 d스쿨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이었다. 1 to 1, 1 to many, many to 1, many to many. 비즈니스 관계의 유형에 따라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검증하는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내용도 체계적이었고 학생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테스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 교수님 말씀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편성 목전에서 자꾸 밀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디자인싱킹 방법론을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들었다. 드라마 산업에서의 MVP는 대본이다. 물론 내부에서 합의된 대본을 편성과 캐스팅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쩔 땐 우리끼리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빠르게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개발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MVP를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편성권자들의 상상력에 기대지 않고, 보다 명확한 투자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개업을 꿈꾸고 입학했던 카이스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업에 대한 꿈이 짙어지고 있었다. 안 해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창업병에 걸린 사람은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카이스트의 창업병에 전염되어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창업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들 용기가 언제쯤 샘솟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교수님 말씀처럼 아이디어를 빠르게 테스트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창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고민을 길게 하지 말고, 일단 냅다 시작하는 것이 답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