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은 다시 돌아온다

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사회 생존기 (14 - 2024, 겨울 3)

by 레브뉘

1) 마지막 불꽃놀이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결로 한창 전 세계가 뜨거웠던 2024년 11월,

카이스트 PMBA도 차기 원우회장 선거 열기로 가득했다.


"그럼, 네가 선관위를 해."


어느 술자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2024년 가을학기,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원우회장과 한 잔 하던 중이었다. 덥석 물었다. 1학년 원우회에 대한 불만이 슬금슬금 올라오던 시기였다. 물론 대놓고 앞에서 불만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ㅇㅇㅇ이 내년에 회장 후보로 나온다더라', 'ㅇㅇㅇ이 회장을 하면 잘하겠더라'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판을 쳤을 뿐. 그럼 어디 한 번 판을 깔아줄 테니 공식적으로 유세를 해보시라는 마음이었다.


선거일은 1월이었지만, 11월 15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약 2달에 걸쳐 선거 유세를 진행하기로 했다. 18명이나 되는 원우들이 추천을 받았다. 후보자 추천은 철저히 익명. 이메일 수집조차 하지 않아서 구글폼을 만든 나 조차도 누가 누구를 추천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카더라 통신'에서 언급되었던 인물 중 추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내가 추천했다.



막상 정식 후보로 등록한 건 단 두 팀뿐이다. 나머지 16명이 고사했다. 일시적으로 카더라 통신이 잠잠해져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두 팀뿐이었던 게 문제가 됐다. 세 팀만 됐어도. 당선되지 못한 두 팀이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을 테다. 1:1 대결 구도라니. 원래 생각했던 건 지성인답게 공약을 내세워서 정정당당히 선거 유세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수업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 선거유세를 하는 모양새가 마치 인기투표로 변질되는 것만 같았다. 선거 캠프를 꾸려도 되냐고 묻는 후보도 있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1년 동안 잘 묶어두었던 원우들이 두 팀으로 분열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아닌데. 설마, 다들 대학 졸업한 문명인인데, 별 일이야 있겠어. 쌓여가는 걱정을 애써 누르고 있던 중이었다.


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유세를 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후보자들 중 한 명과 갈등이 있었던 원우가 종강파티 날 공격형 질문을 할 거라는 제보를 받았다. 심지어 같은 원우회 멤버였던 그는, 원우들 다 같이 즐길 종강 파티를 함께 기획했어야 했다. 그런데 파티를 깽판 칠 거라고 엄포를 놓고 다니다니. 어이가 없었다.


종강파티 커리큘럼을 전격 수정했다. 원래 의도했던 건 손석희의 대선토론회. 각 후보의 공약을 세세하게 파헤쳐, 원우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에게 힘이 실리길 바랐다. 공약을 지킬 다짐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원우들에게 더 이상의 균열이 생겨서는 안 됐다. 대선토론회를 과감히 버리고,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로 했다. 심야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콘셉트로. 종강 파티를 딱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2) 조직 진단서


카이스트에는 조직 관련 수업이 별로 없다. 나는 가뭄에 콩 나듯 열리는 조직 관련 수업을 따라다니며 수확을 했다. 2024년 겨울 열린 '조직 설계와 혁신'은 이론과 실습이 적절히 섞여 있어, 지금 재직 중인 조직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었던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진단'을 하기 위한 다양한 언어를 학습했다. 조직 구조, 의사결정 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프레임워크들. 조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됐다는 건 큰 수확이었다. 수업에서 배운 도구로 지금 회사를 진단해 보니, 문제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구조적 문제였다. 결재 라인과 실제 업무 지시의 괴리.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해결하려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했다.


대표님이 바뀌고 1년 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한 번도 이직을 하지 않았는데, 8번째 대표님과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만간 9번째 대표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표가 바뀔 때마다, 생소한 내 직무를 소개하는 일도 지쳐가던 중이었다. 바뀐 대표님은 좋은 조직을 찾아 계속해서 조직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시스템이 갖춰지기도 전에 계속해서 변동됐고, 1년 넘게 제대로 된 팀원 없이 인턴들과만 일을 해 나가야 했다. 자꾸만 바뀌는 환경 탓에 업무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스트레스가 날로 쌓여만 갔다.



종강파티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회사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다행히 원우회 활동이 있었다. 당선자가 나오고, 파티를 끝내니 확실히 회사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나는 결과물을 내야 하는 사람이다. 오롯이 하나를 내 힘으로 완성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비단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느냐 안 올라가느냐의 문제가 아닌 거다. 그런데 2021년 이후 크레딧도 올라가지 못하고, 대본 개발에 참여는 하지만 구원투수로 잠깐잠깐 프로젝트 중간에 투입되었다 빠지니 힘이 빠질 수밖에. 물론 선관위도 종강 파티도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말이다.


1년 간의 기획부 업무가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2박 3일 대전행에서의 간담회, 기수 연합 신년회가 이어졌다. 원우회 업무는 끝난 듯 끝나지 않았다. 사실 연합신년회는 내가 한 게 별로 없었다. 현명한 부장님의 선견지명에 따른 R&R 분배로, 우리는 종강파티와 연합신년회를 철저히 나누어 준비했다. 연합 신년회 PM을 맡은 언니가 고생을 했지. 하필 회사 일이 겁나게 바빠지고, 빡빡한 대전 일정을 소화하며 신년회 준비를 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너무 부족했던 거다. 완벽주의 성향 탓에 업무 위임이 어려웠기도 했을 터. 결국 연합개총 때 '이렇게 하지 말자'던 소통 부재가 그대로 반복됐다.

연합신년회는 가을학기 연합개총 때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가는 방법으로 구상했다. 호텔은 생각보다 네트워킹이 잘 되지 않으니, 펍을 빌려 자연스러운 밍글링을 해 보면 어떠할까. 150명 이상을 수용할 장소, 학교의 한정된 예산, 각 기수 원우회비 사용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자꾸만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다시 호텔에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코스요리가 아닌 뷔페로 강제 이동 동선을 만들어 밍글링을 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신년회에서 다음 원우회장을 소개하며, 길었던 1년 간의 원우회 활동이 정말로 막을 내렸다. 한 번도 이직을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마치 새로운 회사를 다니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느 조직에서 일할 때 가장 편안할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적당히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월등한 리더 밑에서, 높은 자유도로 일을 할 때. 그런 회사가 존재하긴 할까. 타인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게 맞는 시스템을 내가 직접 만들 수밖에 없는 건가란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1 달이라는 길고도 짧은 방학이 시작됐다. 어떻게 2학년을 맞이할 것인가.

이런 고민도 벌써 1년 전. 또다시 겨울이 왔고, 우리는 2026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전 13화패러다임 시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