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 사회 생존기 (5 - 2019~2023)
1) 초봉 150만 원의 무게
"박 PD는 첫 회사니까 3년은 다녀야 해."
퇴사하며 남긴 선배의 말을 잘 따랐다. 드디어 만 3년이 되던 해,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자의가 아니라는 거다. 모회사의 결정으로 여러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드라마 제작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드라마를 계속하려면 회사를 옮겨야 하고, 남아 있으려면 드라마를 포기해야 했다. 전혀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옵션도 있었지만, 일단 옮겨진 회사를 한 번 지켜보기로 했다.
2019년 1월, 세 회사 출신 PD들이 한 곳에 모였다.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기업 문화도 달랐던 세 회사. 당시 대표님은 세 회사를 드라마제작 1 본부 / 2 본부 / 3 본부로 나누었다. 경쟁 체제였다. 기획/제작 모두 각 본부에서 알아서. 함께 넘어간 PD들과 2 본부가 되었다. 1 본부와 3 본부는 바빴다. 당장 들어가야 하는 작품이 있었다. 우리 2 본부만 편성 예정작이 없었다. 아이러니했다. 기획팀일 땐 제작을 했는데, 제작본부가 되니 기획을 하게 되다니.
3번째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왔다. 지난 회사에서는 두 번의 연봉협상을 했지만, 협상이 아닌 통보였다. 인사팀은 사내 급여 테이블에 따라 변경된 연봉이 새겨진 연봉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연봉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인사팀은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오산이었다. 역시나 물가상승률보다도 미미한 인상률. 나는 그냥 체념했는데, 동료는 가만있지 않았다. "하긴, 너네 연봉이 제일 낮긴 하더라." 입이 가벼웠던 경영이사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2 본부 연봉이 1 본부, 3 본부보다 한참 낮다는 것을.
2016년도의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 월 환산액은 1,260,270원. 내 초봉은 그보다 아주 조금 많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그래도 별 불만 없이 다녔다. 다른 회사와 비교할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PD들보다 낮은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기업의 지불 능력이 곧 근로자의 급여니까. 다른 산업의 친구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건, 나와 다른 길이라 여겨 크게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규모, 같은 산업, 같은 직무의 PD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고 있다니. 너무 힘이 빠졌다.
세상 모든 경영진이 비용을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건 아니길 빈다. 하마터면 세 회사의 연봉이 하향평준화 될 뻔했다. 가만있지 않았던 동료 덕분에 처음으로 연봉이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랐다.
2) 또다시, 살아남기 위하여
드디어 2 본부에서도 처음으로 편성작이 나왔다. 편애가 가득했던 본부장님은 아끼는 작가들을 아끼는 PD에게 배정했다. 내게 배정된 건 안 풀리는 작가들. 그런데 그 작가들 중 한 명이 편성이 된 거다.
아이템을 못 찾고 한참 방황하던 작가님이었다. 갖고 계신 아이템을 모두 보여달라고 했고, 그중 염매를 소재로 한 영화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왔다. 조연으로 등장했던 형사와 MZ 무당을 주인공으로 시리즈물로 기획했다. 순조롭게 촬영 준비가 진행되던 중, 방송사의 사장님이 바뀌었다. 드라마국 책임자들도 싹 바뀌었다. 라인업에서 4개를 빼라고 하셨다. 그중 하나가 우리 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촬영 한 달 전이었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모두 신인이었던 것이, 주연배우가 약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본부장님이 회사를 떠날 무렵이다. 1 본부와 3 본부와의 경쟁에 지쳐가시던 본부장님은 편성 직전에 회사를 떠날 결심을 하셨다. 방송사에서도 제작사에서도 책임자들이 떠나간 프로젝트는 공중에 붕 뜰 수밖에. 2 본부가 해체되고, 경영이사는 내게 기획팀으로 전환배치를 제안했다. 이게 웬 떡이냐. 드디어 제대로 된 사수와 함께 기획팀 일을 할 수 있다니. 자유방임주의 팀장님께서는 적당히 내게 권한을 위임하셨고, 열정이 넘쳤던 나는 없던 일도 만들어내며 작가를 발굴하고 각색할 원작을 찾아다녔다.
기획팀의 르네상스 시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믿고 따르던 팀장님께서 퇴사를 하시며, 팀은 해체 위기에 놓였다. 당시 인원은 5명. 한 명은 팀장님이 없는 회사는 다니기 싫다며 따라 퇴사를. 남은 세 명은 제작팀으로 전환배치가 될 운명의 기로에 놓였다. 어떻게 기획팀에 왔는데, 다시 제작팀으로 갈 쏘냐.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기획팀 3개년 프로젝트를 계획해 대표님을 설득했다. 30년간 일을 해 오신 대표님께서, 팀을 살리겠다는 팀원을 처음 만나보셨단다.
2022년. 기획팀을 이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인원은 2명.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 명은 제작팀으로 전환배치가 되었고, 1년 차 막내와 나 단 둘이 기획팀을 일구어야 했다. 겪어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른다. 팀원으로 있을 때는 팀장님이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팀장의 무게는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 대표님께 보고하는 건 익숙했다. 전에도 다이렉트로 보고했던 일이 많았으니까. 문제는 '실적'이었다. 1년 차 막내와 둘이서 편성작을 만들어내야 했다. 팀원 매니지먼트도 일이었다. 막내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나도 제대로 된 사수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일은 세 배가 되었지만, 연봉은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았다. 경영이사는 연봉협상 시기가 아니니, 직책수당만 '챙겨'주겠다고 했다. 7년 동안, 이직을 여러 번 시도했다. 항상 연봉협상에서 결렬되었다. "직전 연봉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 질문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첫 회사의 초봉이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걸. 이직으로도 해결이 어렵다면, 답은 하나다. 부업.
2022년 말, 넷플연가 모임장을 시작했다. 회사의 구성원이 아닌, 오롯이 '나' 자체를 브랜딩 하고 싶었다. 드라마 기획 PD라는 생소한 직무. 이걸 이용하자. 넷플연가 모집공고를 본 한겨레교육에서 연락이 왔다.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아직 모임도 시작 전인데. 강단에 선다는 게 부담되었지만, '이 강의는 나만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제작사협회에서도 멘토링 제의가 왔다. 사수 없이 헤맸던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후배 PD들을 만나 맨땅에 쌓아 올렸던 노하우를 전했다. 잊혀가던 초심도 되돌아봤다.
파이프라인이 늘어났다. 회사 월급 외에 부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나자 한계가 보였다. 부수입으로 메우기엔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다. 평일엔 회사 일, 주말엔 강의와 넷플연가 모임. 쉬는 날이 없었다.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커리어 자체를 바꿔야 했다. 더 큰 도약이 필요했다.
2023년,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