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 사회 생존기 (6 - 2023, 겨울)
1) 이별의 시작
"팀장님, 큰일 났어요."
2022년 말, 하나뿐인 유일한 팀원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면담을 신청했다. 대본이 별로인가? 작가가 잠적했나? 감독이 무리한 요구를 했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생길 수 있는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테라스로 향했다.
"저 방송사에 합격했어요."
딩-.
분명 한국어를 들었는데,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짝 상기가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팀원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게 왜 큰 일이야!" 축하한다고 말하는 내게,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떡하냐고 되묻는다. 그럼 맡은 작품 때문에 방송사 입사를 포기한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싶었고, 당연히 그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인턴 친구 둘이 있었다. 1년 넘게 같이 합을 맞춘 후배가 떠나가는 건 슬펐지만, 돌아가는 프로젝트들이 많았고, 빨리 구멍을 메워야 했다. 2년 차 PD 1명이 떠나는 자리에 신입 PD 2명을 뽑아줄 리는 없었지만, 두 인턴 모두 정규직 전환을 요청했다. "박 팀장 손으로 한 명을 고르기 싫다는 거지?" 대표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다.
2023년 9월, 새로운 팀원이 면담을 요청했다. 작년 겨울이 떠올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프로젝트가 바쁘게 돌아가는데, 공고를 내서 새 팀원을 구한다? 아득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뽑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왜 나는 하필 대문자 T인가. 최대한 부드럽게, 울지 말고 뭐가 힘든지 얘기해 보라고 했다. 일이 많으면 일을 줄여주겠다고.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촬영이 코앞인데 어떻게 일을 줄여주나.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친구를 밀어내고 혼자 살아남은 느낌이라고. 드라마를 계속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울먹거렸다. 이 때는 몰랐다. 더 큰 이별수가 몰려오고 있었다는 걸.
2023년 10월, 연간 가장 큰 행사가 돌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BSM에 참석하는 일이다. 마음이 떠난 팀원과 함께 다녀와야 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심상치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핑-하고 머리가 돌았다.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다. 숙소에 짐만 던져놓고 바로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도 거의 끝물인데. 한 번도 안 걸렸는데.
A형 독감이었다. 난생처음 걸린 독감이 하필 출장 중이라니. 가장 비싼 수액을 때려 넣고 일정을 소화했다. 저녁 미팅은 팀원 홀로 내보냈다. 약을 먹고 잠시 기절했다, 서늘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출장 이틀째 밤이었다. 남은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IP 사들 미팅을 다음 날 오전으로 몰아넣고, 제천으로 향했다. 작가들 미팅은 팀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친인척의 장례가 처음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은 나를 친구 집에 맡기고 장례식에 다녀오셨다. 100세를 코앞에 둔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흘러갔다. 장례식에 잘 수 있는 방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방에서 MBA 지원서를 썼다.
2) 계속되는 이별
작년부터 어렴풋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했으나, 어느 과를 가고 싶은 건지 막연한 상태였다. 2023년 8월, 링크드인 타깃 광고로 카이스트 MBA 입학설명회 안내를 받았다. MBA는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였다. 홍릉이라니. 콘텐츠진흥원 분소가 있어 익숙한 곳이긴 했다. 좀 멀긴 한데, 마침 시간도 있으니 다녀와 보자.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홀린 듯 9월 PMBA 전공설명회도 신청해 버렸다.
삼일장을 마치고 사무실 복귀를 하자 팀원이 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두 번은 잡을 수 없었다. 한 번 떠나간 마음을 붙잡는 건 아니다. 처음 나간다고 했을 때 바로 후임을 찾을 걸 그랬나. 아직 이별수는 끝나지 않았다.
유리멘탈의 작가와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대본을 못 쓰겠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온 세상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 같다며. 그날도 그런 전화였다. 그런데 하필 나의 대문자 T가 발동했고, 작가는 울며 전화를 끊었다. 주말에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으나, 여느 때와 같이 좀 진정이 되면 연락이 오겠거니 했다.
그 주말, MBA 면접이 있었다.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서류 접수도 험난했다. 이메일 접수는 안 받았다. 인쇄를 해서 우편으로 접수를 해야만 한다고. 간신히 마감 기한을 맞추어 제출했다. 한숨 돌리나 했는데, 입학처에서 서류가 누락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교환학생 성적표를 '원본'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10년도 더 지난 Sciences-Po 계정을 찾아 성적표를 인쇄한 것도 기적이었다. KAIST 입학처에서는 홈페이지 들어가면 e-transript 기능이 있을 거라며, 입학처 메일로 바로 전송하면 된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없었다. IT 강국 대한민국의 착각. 프랑스를 우습게 봤다. 일단 Sciences-Po에 문의 메일을 보내놓았다. 직접 KAIST로 성적표를 보내달라고. 당연히 서류 마감 전에 보내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원본을 보내라는 건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겠지. 추가 서류로 Sciences-Po에 보냈던 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함께 제출했다. 안 되면 말고. 2달 뒤, Sciences-Po에서 회신이 왔다. 자기들은 담당이 아니니 다른 곳으로 문의하라고. 이미 MBA 합격 통보를 받은 뒤라 무시했다.
면접은 매우 짧았다. 왜 영상 대학원으로 진학하지 않고, MBA를 오려고 하냐고. 기획 PD는 궁극적으로는 작가나 대표가 돼야 하는 숙명이 있다고, 경영을 배워야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게다가 이미 10년 넘게 이 산업에서 일을 하면서 네트워킹은 할 만큼 했고, 영상 대학원에서는 내가 가르치면 가르쳤지 배울 게 없다고.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교수님들이 빵 터지셨다. 한 백발의 면접관 교수님께서는, 이번에는 붙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학부 성적을 보고 하신 말씀이리라.
월요일 아침, 대표님께서 보자고 하셨다. 딱히 부를 일이 없는데. 유리멘탈의 작가는 나와의 전화를 끊고 바로 울면서 대표님께 전화를 했단다. 대본을 쓸 수가 없다고. 감독은 능력이 없고, 배우는 마음에 안 들고, 집필실도 너무 멀고, 법인카드도 없고, 담당 PD는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대표님은 감독과 배우를 지키는 대신 담당 PD를 바꾼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두가 반대했을 때, 나 혼자 밀어붙인 프로젝트였다. 공모전 당선도 하지 않은 신인 작가를 데려다 캐스팅과 편성이 되는 대본을 만들어낸 나였다. 처음으로 대표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가장 큰 이별수였다.
그러나 이별 후엔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그리고 회사는 아직 모른다. 내가 MBA에 다니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