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 사회 생존기 (4 - 2016~2018)
1) 다시, 현장으로
고대하던 드라마 기획팀에 입사했는데, 2주 만에 제작팀 인원 전부가 퇴사했다. 현장을 피해 왔는데, 다시 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나는 짧은 현장 경험이 있기라도 했지. 기획만 5~6년 해 온 선배들도 죄다 현장행이었으니.
당시 조직의 구멍은 '현장 경험의 부재'였고, 팀장님은 내가 그 구멍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기대를 완벽하게 채운 것도 아니었다. 영화 스텝과 드라마 스텝이 서로의 분야를 넘나들기 전이라서, 영화 현장과 드라마 현장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 연출팀과 제작팀이 해야 하는 일도 달랐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제작 사수 없이 현장으로 나갔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수밖에.
가장 큰 실수는 모 기자의 질문에 대응을 어설프게 했던 일이다. 당시 드라마에서는 '액팅 어시스턴트'라는 생소한 직무를 채용하고 있었다. 구인공고를 내 개인 연락처를 올렸던 것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던 것도 실수다. 처음엔 지원자 중 한 명인 줄 알아서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그런데 점차 지원자라기엔 질문이 매서워져, "죄송하지만, 누구신데 이런 것들이 궁금하세요?" 나름 공손하게 되물었다. "제가 처음에 ㅇㅇ일보 ㅇㅇㅇ기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나요!"
안 했다. 했더라도 웬만한 래퍼는 잡아먹을 정도의 속도로 했겠지. 다음 날, 실명으로 기사가 나갔다. 기자 친구들은, 부정적인 기사에 실명을 넣는 건 악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다행히 사실이 왜곡되어 전달된 건 없다. 드라마에 큰 피해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호랑이 감독님의 호출. 조감독님들이 감독님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꽤나 걱정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맞으면 어떡하나. 그런데 감독님도 낭만주의자였다! 업계에서 불문과 직속 선배님을 만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더구나 나를 좋아하시던 3분의 교수님 중 한 분과 형동생하는 사이라니. 다행이었다.
이후 나는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회인들은 문자로 본인의 소속과 용건을 밝히더라.
급하게 뽑은 경력직 제작 PD가 한 명 있기는 했다. 그러나 사람을 급하게 뽑을 땐 위험요소를 제대로 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0년 차인데 예산을 짤 줄 몰랐으며, 현장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윗사람들 눈치만 보기 급급했던 그는, 결국 성추행으로 조직에서 방출당한다. 이후로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본 적이 없어 계속 방송계에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윗사람을 가려 섬기는 내게 그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터.
2) 쓸쓸하고 찬란한, 최고참 막내
2016년. 입사 첫 해는 드라마 두 작품을 소화하며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렇지만 나는 조직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다른 곳을 향했다. 이 회사가 나의 종착지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채용 공고를 들락거렸다. 신입 채용이 언제 뜰까. 왜 죄다 3년 차 이상 경력 공고뿐일까. 그런데 이 시기부터 방송사는 한동안 신입 PD 채용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채용이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준비를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2017년. 만 1년이 지났는데 기획팀의 최고참이 되었다. 입사 당시 10명가량의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모두 조직을 떠난 것이다. 내가 믿고 따르던 선배님들은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며, "박 PD는 첫 회사니까 3년은 버텨야 해. 1년 동안 3~4개의 작품을 론칭하는 곳 흔치 않아. 첫 회사로 나쁘지 않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들은 떠나가면서. 그리고 3~4개의 작품을 론칭한 모든 사람들-심지어 대표님까지도-이 사라진 조직에 남아있는 게 과연 맞았던 걸까. 그 당시 고민 상담을 했던 감독님을 5년 뒤 다시 만났는데, "거기 연봉이 그렇게 낮은 줄 알았으면 나오라고 했지, 내가!"
그러나 난 남아있는 것을 택했고, 기획을 전혀 모른 채 작가님을 마주해야 했다.
기획팀 업무를 전혀 하지 않고 현장만 봤던 건 아니다. 입사 3일 차 땐,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 크랭크인 1달 전. 아직 사무실로 출근을 하던 시기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드라마에, 모 공모전 당선작가로부터 표절 이슈를 제기받았다. 우린 웹툰을 각색한 드라만데, 표절 이슈라니. 작가는 원작 웹툰과 본인의 당선작은 전혀 유사하지 않다며, 그런데 우리 드라마의 기획안은 본인의 당선작과 문장까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회사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작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당시 막내였던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사수 기획 PD님과 팀장님께서 요청하시는 대로, 당선작과 웹툰의 유사지점을 찾아 보내드렸을 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기획 PD 업무는 이것뿐. 집필실 관리 방법이나 퇴사하는 선배님들께 인수인계를 받았지. 작가님들과 회의를 어떻게 하는지, 대본은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회사는 학원이 아니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PD와 일하는 작가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작가님은 나를 학생이라 여기며 작업을 하셨던 것 같다. 말이 되건 안 되건 거르지 말고 일단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그렇게 1년 즈음 흘렀을까, 기획 전문가 본부장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드디어 내게도 사수가 생기는구나.
캐스팅디렉터 출신의 본부장님께서 20년간 쌓은 작가/감독/배우 네트워크는 어마어마했다. 함께 대본회의를 다니며 작가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체득할 생각에 들떴다. 그러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때마침 촬영이 들어갔고, 회사는 기획팀 인원을 또다시 현장으로 보냈다. '기획팀인데 왜 현장에 나가야 하냐'는 불만이 가득한 채 나간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현대극인데도 말을 섭외해야 했고, 매 회 각종 경연대회가 이어지는 특이한 드라마였다.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순간들이 가득하고 아무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현장. 종방연 때 스텝들은 날 보고 놀랐다. "박 PD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
결국 교육원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받으면서 기획을 배울 수 없다면, 돈을 내고 기획을 배우면 되지. 그런데 기획 PD 수업을 찾을 수는 없었다. 2025년 현재에도, 작가/감독/제작 PD가 아닌 기획 PD 지원자들을 위한 수업은 내가 하고 있는 게 유일하다. 그래서 대체재로 작가 교육원을 선택했다. 작가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사람의 뇌를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마음 한편에 언젠가 내 글을 쓰겠다는 꿈을 품고 있기도 했다. 기초반-연수반-전문반을 차례로 진학하며 단막극 3편을 완성했다.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백지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이미 있는 글을 더 좋게 만드는 걸 잘한다.
2018년 말. 드디어 만 3년을 채웠다. 이제 맘 놓고 회사를 옮겨보려는 찰나, 회사가 나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