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 사회 생존기 (8 - 2024, 여름)
1) 계획에 없던 초대
"함께 원우회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렸어요."
주말에 원우회장에게 톡을 받았다. 원우회장과는 OT 뒤풀이 3차에서 5분 정도 이야기해 본 것이 전부다. 나에게까지 제안이 온 걸 보면 '지원자가 정말 없나 보다' 싶었다. 신년 운세에서 '학생회 같은 단체 활동은 피하라'고 경고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누르고 제안을 수락했다. 다양한 전문가 동기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막상 발표된 원우회 멤버를 보니 지원자가 차고 넘쳤다. 오히려 인원이 너무 많아 뒤늦게 신청한 사람은 방출(?)이 되기도 했다. 1년 뒤 원우회 운영 결과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년운세를 따랐어야 했을까. 원우회를 하지 않는 동기들은 원우회 활동이 어떤지 궁금해했다. 마치 회사를 하나 더 다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회장과 부회장 아래, 각 부서의 부장님 아래 부원들. 우리 기획운영부의 주 업무는 연간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당장 개강총회부터 준비해야 했다. 개강총회라니. 언제 마지막으로 갔던가. 기억이 가물한 채, 참석 수요조사를 받고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직 성향 파악도 되지 않은 새로운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건 힘든 일이다. 장소 선정부터 난관이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 굳이 홍릉까지 갈 필요는 없었고,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행사를 기획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다행히 일잘러 부원들이 모였다. 삐그덕 거리긴 했지만, 준비는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막판에 펑크가 났다. 명찰과 현수막을 들고 오기로 한 부원이 연락 두절된 것.
1학년 원우회 생활을 돌이켜보면,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롯이 부장님 덕분이다. 매니지먼트의 달인인 그는 업무 분장부터 상황 대처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맞춤형 가스라이팅(positive)의 대가여서, 우릴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이 아주 기똥찼다. 개총 준비 초반, 나의 대문자 P력이 발동해 일을 막판까지 미루고 있을 때, 회장님과 부회장님은 안달복달하며 자꾸만 갠톡을 보냈다.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회사 생활 10년 차다. 사회화된 언어를 모를까. '빨리 하라'는 뜻이다. 하필 회사 일까지 바빠지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무렵, 부장님께 연락이 왔다. 힘들다는 얘기를 꺼낸 적이 없는데. 부장님은 회장부회장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하게 조율해 주셨다. 리더의 진면목을 보았다. 그 후로 맹목적인 followship이 시작되었다. 종강MT는 개강총회보다 훨씬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훨씬 수월했다.
2) Producer, 말로 먹고사는 사람
봄 학기가 끝난 바로 다음 주, 곧바로 여름학기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화 목 토요일마다 홍릉 캠퍼스로 향해야 했다. 심지어 토요일 수업은 오전 9시 시작이었다. 나는 출근이 10신데. 출근 시간보다 빠른 등교라니. 낭만주의자가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무게는 너무 버거웠다.
재무회계 수업에서는 통계에 이어 두 번째 절망을 맛보았다. 드라마 예산만 볼 줄 알았지, 회사의 재무제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다. 무엇보다 실무 적용이 안된다는 괴리감이 컸다. 해외 대학에서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을 초빙한 것도 문제였다. 나는 한국 재무제표를 볼 건데, 왜 Debit과 Credit을 배우며 Balancesheet을 들여다봐야 하나. 수업 시간에 분개(Journalizing)만 하다, 분개(憤慨)하고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걸까. MBA를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재무회계의 깊은 절망 속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협상론 수업이었다.
다행히 협상론은 통계나 재무회계와는 달리, 나의 감과 경험이 빛을 발하는 영역이었다. 교수님은 협상론 강의를 시작하며 일상에서 협상을 했던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사실 나는 매일이 협상의 연속이다. 작가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Producer는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프로듀서의 본질은 설득이다. 원작 IP를 구매하거나 작가를 계약하기 위해 회사를 설득해야 한다. 대본 수정을 하려고 작가들에게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날리는 것이 일상이요, 감독을 설득해 연출을 맡기고 배우를 설득해 연기를 시킨다. 플랫폼을 설득해 투자를 이끌어내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다. 극본료/연출료/출연료/용역료 조율은 물론이고, 스텝들의 무리한 요구를 설득해 촬영을 무리없이 진행시켜야 하는 게 내 업이었다.
협상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매 수업마다 진행되는 실습이었다. 슬슬 동기들이 익숙해져 네트워킹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던 시기다. 첫 번째 1:1 협상 실습 상대가 랜덤으로 배정되었다. 11기 선배님이었다. 간략히 소개를 하고 바로 역할에 몰입을 했다. 나는 비싸게 파는 게 목표고, 그는 싸게 사는 게 목표였다. 나는 '되게 저렴하게 팔았다'고 걱정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꽤나 비싸게 잘 팔았더라.
훗날 선배님은 나의 '엄살 스토리텔링 기법에 말렸다'며 동기들에게 날더러 무서운 상대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나는 재밌게 협상을 마친 기억밖에 없는데 어째서?
BATNA, Anchoring Effect 등 협상에 관한 이론도 많이 배우긴 했다. 그러나 머리로만 안다고 바로 실천이 되는 건 아니다. 교수님은 협상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타고나기를 협상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심야 라디오 DJ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적절히 감정을 섞어서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협상은 다툼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합의하는 과정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도 동일하다. 결국 우리 모두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서로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나 혼자만 양보를 하면 호구다. 먼저 양보를 한다면, 반드시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을 활용하고 이성(MIND)과 감성(HEART)을 적절히 사용하며, 작가들과의 섬세한 관계를 더욱 원활하게 관리해 나갔다. 2023년에 알았으면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려나. 유리멘탈 작가와 겪었던 충돌은 상대방의 BATNA를 무시하고 이성만으로 밀어붙였던 나의 협상 실패였다. 결국 프로젝트 하차로 이어진.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됐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은 언젠가 헤어졌을 터.
캐스팅과 편성으로 고군분투하고있는 이사님께 당장이라도 협상론 교수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나, 회사에서는 아직도 내가 MBA에 다니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