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좋아해주는 당신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글도 쓰는 것이 어떨지 - 라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내 글이 감동적이라는 말과 함께.
숨을 훅 들이쉬었다. 그 편지를 들이마셔서 아주 오래 내 안에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고등학교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여승이나 진달래꽃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하는 시들이 파도처럼 몰려와 내 마음에 바닷가를 지었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은 꼬박 밤을 새고 다음날 학교에서 내리 졸았다. 쓰다 지우다를 하도 해서 까맣게 빈 종이와 그 옆에 돌아앉은 지우개는 내 사춘기의 상징이었다.
사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 글은 언제나 나뭇가지 앙상한 겨울 아니면 새벽. 내 낱말들은 파르스름한 물안개가 피는 어느 마을에 널려 있었다. 나는 고집쟁이 수학자처럼 퍼즐을 맞추듯 낱말을 맞추어 열을 세우는 데 몰두했다. 나는 정말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중고등학교 때 나는 비실비실해서 병원과 약국을 자주 다녔는데, 그 때마다 엄마는 내가 글을 쓰고 싶어한다고 했고 아저씨는 거의 웃었고 가끔 그런 말을 했다. 시인이 되려면 경험이 중요하지. 나는 속으로 내가 가진 글자수만큼의 경험을 손꼽아보았다. 나는 어쩌면 시인은 마음의 나이가 아주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몇 번의 글짓기 대회를 나갔고 가끔은 뚜껑이 달린 상장을 타 왔다. 하지만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만둔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냥 어느 날 조지훈 시인의 승무 를 폈는데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우고 하는 이 아름다운 글을 더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평생 서러운 지우개와 둘이 밤을 샌대도 이런 시에 닿을 수나 있을까. 그 날도 다음 날도 하늘이 묽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글을 쓰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잘 하지 않았다. 내게 글을 짓는다는 일은 자음과 모음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천을 짓는 일이다. 어떤 글은 따뜻하고 어떤 글은 날렵하다. 나는 전에는 황홀한 글이 짓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내가 갖고 싶었던 황홀이 허황인 것 같아 부끄러워 내 실에 아무것도 엮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는 다시 감사한 당신께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감사한 편지를 받았다. 기분이 묘하다.
오늘은 하늘이 묽다. 지금은 새벽 한 시다. 이런 짧은 문장들이 엮여서 글이 된다. 다시 연필을 들까. 연필은 여전히 무거울까
밤은 여전히 길고 나는 여전히 한 문장을 놓고 고민한다.
예와 아니오 사이에는 흰색과 검은색 사이처럼 많은 색깔의 대답들이 놓여 있다. 나는 다시 오래 전의 결심을 번복하고 그렇게 나는 내 오늘을 만연체로 끝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