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작성하는 픽셔널(fictional) 에세이. 길었던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간의 촌극을 회상한다.
다이슨에서 마스크가 나왔다. 6년 동안 개발한 역작이다. 이름은 Dyson Zone. 귀에는 음악을 들려주고 코와 입에는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헤드폰이다. 공기정화가 되는 헤드폰이다. 무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되어 주변 소음 차단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공기 오염과 소음 공해라는 도시의 주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제품”이다.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다이슨은 분명 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것이 틀림없다. 오늘의 촌극이, 내일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될 수도 있다. 부디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익숙해진다면 그 나름대로의 일상이 지속된다. 그래서 이른바 ‘뉴 노멀’인가 보다.
지난 팬데믹 동안 마스크 착용은 필수였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566일 만인 지난 2022년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여전히 실내나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공연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착용하도록 되어있어 아직 완전한 마스크 해제는 아니다. 벌써부터 마스크 공장이 망해가네 하고 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마스크 브랜드들이 색깔별로 종류별로 탄생했으며, 마스크 스트랩, 숨쉬기 편하게 하는 보조용품, 각종 마스크 방향제, 마스크에 묻지 않는 화장품, 귀에 쓸리지 않게 하는 작은 실리콘까지 온갖 종류의 파생상품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익숙한 마스크, 참 구하기 어려웠다.
마스크 대란이었다. 입국하기 직전인 2020년 초에는 팬데믹이 심해지기 전이었는데도 불구, 중국 외에는 이탈리아 등지에서 한두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만으로도 아마존에서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구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펠트지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 휴지, 키친타월 대란이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사재기가 어마어마했다. 마스크 대란만큼은 한국도 마찬가지라서, 공무원들이 차출되어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고, 기업인들이 마스크 필터를 들여오고, 공장들이 마스크로 업종을 바꾸고, 천 마스크 만들기 정보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사람들은 비말 감염을 차단해줄 마스크를 애타게 찾아 헤맸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니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을 못한다는 뜻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경우에 바이러스가 곳곳에 침투할 수 있다는 굉장한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마스크 없는 외출 자체가 공포이기도 했다. 마스크를 삶아 쓰고, 삶아서 햇볕에 말리고, 한번 쓴 마스크를 두 번 정도는 써야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출퇴근하는 마당에 안 나갈 수도 없고, 덴탈 마스크가 아니라 KF94, KF80 정도 마스크는 써줘야 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쓰다 보면 금방 동이 났다.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었다. 약국에서 심지어는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일인당 두장의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생일 끝자리에 맞는 날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월요일이면 아버지 마스크 사는 날이에요, 화요일이면 어머니 마스크 사는 날이에요, 수요일이면 내가 마스크 사러 가는 날이구나 하고 찾아갔다. 찾아간 약국에는 줄이 어디까지 서있는지, 마스크 재고가 있는 곳을 찾아 또 찾아 헤매곤 했다. 운이 좋게 누구의 삼촌의 친구가 아는 공장에서 마스크 백개를 준다더라 하고 받으면 참 몹쓸 짓이라고 한 것 같고, 나는 외출을 안 해도 되니 외출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에게 마스크를 주기도 했다.
참 귀하디 귀한 마스크. 수급이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참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는 마스크 수도 제한이 되어있어서 우체국 직원들이 마스크 몇 장이세요 하고 물었다. 외국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여전히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친구들은 완전히 락 다운한 도시에서 집안에 고립되어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상황이 나은 한국에서 여기 마스크야 하고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라도 팬데믹에 살아남아야 한다고, 제법 간절한 마음으로 마스크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 자체가, 3년 전의 나에게로 돌아가서, “내년에 일어날 일이야” 하고 말한다면, 완전히 콧웃음 치겠지.
더 심각한 팬데믹이 올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더 심각한 대기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매일 같이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심각에 더 심각에 더더 심각한 상황이 언제든 예기치 않게 일상을 위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간절한 생존본능은 살아남기 위하여 어쩌면 다이슨의 마스크를 떠 올릴지 모른다. 공기정화 마스크 대란, 공기정화 마스크 5부제, 공기정화 마스크 의무화… 그러니까, 이게 시트콤도, SF도 아니라면, 오늘의 현실도 남은 미래도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아니었으면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