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물 색깔 좀 봐" 지중해로 가면 일단 색감부터가 다르다. 이건 런던에서 본 것도, 다른 휴양지에서 본 것 과도 다르다. 필터를 씌울 필요가 없다. 햇빛이, 햇빛을 반사해 내는 불빛과 자연이 어울어져 '지중해 필터'가 입혀진 세상이니 과장을 보태자면 침침했던 눈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자킨토스는 그리스 서쪽에 위치한 휴양섬이다. 바다거북과 파란 동굴, 나바지오 해변의 난파선으로도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알려져있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을 지배했던 왕 다르다노스의 아들의 이름 자퀸토스를 딴 섬이라니 벌써 그리스로마신화 한 편 뚝딱이다.
그리스의 섬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코로나로 3년을 잡아먹어 그런가. 얼마 전인 것 같으면서도 2019년이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다. 만으로 스물 여섯. 석사 논문을 제출하고. 그러니까 제출하자마자 다음날 바로 떠났다. 논문을 제출하는 아침까지 Proofreading을 하고, 학교 제본소에서 제본을 하고 며칠 연속으로 밤을 새서 비몽사몽이 상태로 일단 어찌되는진 모르겠지만 끝났다!! 하는 마음으로 다신 펼치지 못할 논문을 제출했다. 그 당일엔 아마 같은 과 친구들과 Oyster Bar에서 굴과 술을 한 잔 했다. 그리고 밀린 잠을 잤고, 다음날 자킨토스로 떠났다! 지금 많이 미화된 기억에 의하면, 그래도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놀아서, 순간들이 반짝반짝했다. '열심히' 중독에 걸려있던 나는 돌아오자마자 아니 사실 논문을 쓰는 동안에도 문화원에서 파트타임을 하고 있었는데, 대사관 면접을 잡아두고 갔던 마지막 여행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고, 공백기라도 생기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내려놓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이 뭐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더라!
사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이 상당히 험난해서, 여기가 맞나 싶은 시골까지 들어갔다. 자킨토스 도심이 아니라 완전 시골마을에 갑자기 등장한다! 반짝반짝한 수영장, 반짝반짝한 로비, 런던의 방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은 객실, 친절한 사람들까지 웃음이 안지어질리가 없다. 호텔 리셉션에서 객실까지 버기카로 태워주는데 그 운전해주는 친구랑 알고보니 동갑이었다. 친해져서 그 친구(?)가 나와 친구를 자킨토스 시내로 초대하기도 했는데, 나는 쫄보였고, 그리고 그 친구가 술마시자고 했는데 그럼 우린 숙소에 어떻게 돌아오니..?? 그런 걱정봇이라 안나가기도 했다. 그냥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같이 가서 술도 마셔보고 할껄 그랬나! 이 호텔이 정말 정말 시골 산골짜기 언덕 같은 곳에 있어서 렌트하지 않고 오기가 힘든 곳이었다. 콜택시도 잘 없고, 그래서 도보거리에 있는 것 같은 음식점에 갔다가 올리브 농장을 지나서 한없이 걸어도 걸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서 막막했던 기억, 어찌어찌해서 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우리 히치하이킹 해야하나? 담 넘어가야되나? 하면서 난감했던 기억들도 남아있다.
둘째날은 보트투어를 갔다. 자킨토스에서 찍은 사진은 죄다 청량하고 파란색이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살갗이 빨갛게 타들어가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수건갈고 턱턱 누워있다. 시간이 되어 보트에 탑승했는데, 상당히 빠르다! 자킨토스의 주요 관광 스팟을 도는데, 일단 요트 자체에서도 엄청 크게 EDM 같은 쿵쾅쿵쾅하는 음악이 나오고 파도를 엄청 빠르게 가르면서 통통 튀어가니 정신을 못차린다. 그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애기들, 젊은 커플들 할 것 없이 다들 일단 배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구명조끼는 없음! 하하
이거 물색 뭐야 정말! 너~무 예쁘다! 당시에 들고 다니던 고프로 같은 것으로 나름 열심히 촬영했는데, 데이터가 어디있는지 아니 카메라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크림소다, 에메랄드 빛의 해변, 보트투어의 첫번째 정착지는 나바지오 해변이었다. 저렇게 배가 서있으면 사람들이 내려서 한시간 정도 마음대로 수영하고 사진찍고 놀다가 다시 배에 탑승하는 식이다. 수영을 잘 못하는데, 저기는 얕은 바다라서 걱정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수영하다가 나와서 나바지오 해변의 난파선 앞에서 인증샷도 찍는다. 난파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있는데 1980년 담배를 밀수하다가 난파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력하다. 1980년 10월에 2,000 박스의 담배와 함께 발견되었다고하는데, 지금은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인 장소 중 한곳이다. 타이타닉도 그렇고, 신안 앞바다의 난파선도 그렇고 침몰한 배들이 운명이 관광명소가 될지 누가 알았을까.
그 다음으로 들렸던 블루케이브에서는 잘 하면 바다거북도 볼 수 있었다지만 사실 나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정말 내가 여행 다녀와서 두고두고 친구에게 말하는 에피소드인데, 당시 나도 같이 갔던 친구도 수영을 잘 못했다. 그래서 우습지만(?) 생존을 위해 나는 수영할 때 쓰는 키패드를 친구도 허리에 부착하는 수영보조물품을 달고 다녀야할 정도였다. (나는 아직 호텔 수영장에서도 팔에 튜브 필요하다!) 그런데 저렇게 보트는 해변이 아닌 바다 한 가운데 정박했고, 바다란 고로 발이 닿지 않게 깊은 곳이다. 저렇게 평온하고 찬란해보여도 수영 못하는 사람에겐 무서운 곳이다. 그런데 신생아같이 갓 태어난 애기들도 첨벙 뛰어들고, 다들 보트에서 다이빙해서 블루케이브로 가는 마당에 나도 약간 주저주저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여기까지 왔는데 블루케이브까지 안가는 건 너무 아깝지 않냐"고 하는 말에, 그래 일단 해보자! 하고 키패드를 들고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발은 안닿기 때문에 엄청나게 발장구를 겨우겨우 켜서 블루케이브로 들어갔고, 옆의 벽면을 따라서 겨우겨우 잡고 정신을 차리는데, 아니 친구가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목숨걸고(?) 겨우 바다를 헤엄치고 있구만, 친구는 보트에서 아직 뛰어내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엥? 하는 표정으로 보니, 무섭다고 했다. 동굴은 정말 아름다웠고, 사진이 그 색감을 담아내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보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니 이런 배신감이... 약간 바다 공포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키패드를 놓치면 난 큰일난다. 하는 생각에 엄청난 속도로 수영해서 겨우 보트로 돌아왔다. 지금도 발이 닿지 않는 바다는 못 들어갈 것 같다.
험난했던 투어가 끝나고, 또 반짝거리는 바다와 석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요리와 와인을 마셨다. 그래도 이 순간은 엄청 행복했던 것 같다. 사실 보이는 것 보다는 벌도 날라다니고 벌레도 있고 했지만, 그래도 '아 좋다' '행복하다' 고 기억할만한 순간. 일몰로도 유명한 곳이었고, 꽤 오랜시간 하염없이 바다와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화 'wild'에나 나올 것 같은 길과 올리브 나무들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저런 장면들 하나하나가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스는 다시 한번 꼭 가볼 여행지다. 산토리니나 아니면 다른 섬으로도 가보고 싶다. 시내보다는 자연으로, 다시 그 뜨거운 태양과 바다, 믿기지 않는 색감의 풍경이 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