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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Feb 24. 2022

유니버설 마인드

내가 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2007년의 어느 봄날 이었다.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았는데 도통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30초 정도 후 어둠에 적응이 되어서야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하던 중 4주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되었다. 야간 행군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스스로 밤에 잘 활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안과를 찾아 검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의사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나의 눈은 망막질환 유전으로 인해 발병한 것으로 보이며 점점 시력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보니 할머니는 이미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아버지 역시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단순히 시각이 좋지 않다고 생각 했었고 아버지도 눈이 많이 나빠서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아버지 안경을 써보고 어지럽다고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약 10여년이 시간이 흐르고 첫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하나씩 세상의 이미지와 결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날부터 수돗물의 흐름을 볼 수 없었고 문서의 글자도 희미하게 보였다. 세상은 물이 빠진 싸구려 노트북 화면을 보듯이 색상에 대한 구분도 사라졌다.


잃어가는 시력만큼 붙잡고 도움을 받을 만한 기구가 필요해졌다. 흰 바탕의 글씨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 배경화면을 검게 만들었고 커서의 크기를 크게 바꾸었다. 커서가 주먹만하다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을 할때 커서를 찾으려고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이러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최소한의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

   밤에 돌아다니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밝게 빛나는 LED 가로등 덕분에 익숙한 길은 더듬거리면서 다닐 수 있었다. 횡단보도의 음성안내가 시끄럽게 느껴지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음성안내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광진구에서는 바닥에 신호를 구별할 수 있는 라인형태의 신호등이 있다. 혹자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보기 쉽도록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시력자에게는 멀리 있는 신호를 보지 않아도 신호를 구분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이다. 

계단 끝선에 표시되어있는 표식은 (논슬립패드)는 미끄럼방지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고 일반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 표시가 없으면 계단을 구분하기 어렵다. 반대로 그 표시가 있으면 빠르게 내려갈수도 있다. 그래서 수차례 전철역사에 설치할 것으로 요구했고 7호선 내부 계단에는 모두 설치 되었다. 

내가 운좋게도 서서히 장애를 얻어가면서 이런 사회적인 시스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른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또는 절실하다고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유니버셜 디자인 및 시스템, 정책은 결국 소수를 위한 것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그 혜택이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조건 다수를 위한 정책과 서비스 개발이 우선이 되는것 보다는 불편함을 가지는 사람과 집단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결국은 모두가 행복해지고 나아지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애플이 처음 도입한 마우스와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도 장애인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좌변기 역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고안 되었다. 또한 레버형 손잡이도 손목 사용이 어려운 지체장애인을 위해 고안되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돌리지 않아도 팔꿈치로 문을 여닫을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나라와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공공이 아닌 민간기업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최고의 부자회사가 된 애플의 철학은 모든 사람을 소비자 및 고객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서비스 및 하드웨어에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반드시 화면해설이 들어있는데 시각 장애인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넷플릭스를 이미 즐기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은 테슬라의 자동주행 시스템 (FSD)는 나로 하여금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 희망을 주게 한다.


이러한 유니버설 마인드는 앞으로 혁신을 원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국가에서는 필수적으로 채택하고 철학으로 삼아 운영해나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조금 먼 이야기 같은 ESG 담론보다도 훨씬 사람들에게 가까우며 가슴에 와닿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권, 권리보장을 넘어 기본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불편한 것을 편하게 개선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문제해결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나이가 들면 저시력과 같은 몸의 변화가 분명히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유니버설 마인드가 많은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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