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 어느 고객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는 약 265만 명으로, 인구의 약 5.1%로 추정된다(보건복지부, 2020년 통계).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은 이 숫자를 ‘버리는’ 쪽에서 전략을 세워왔다. 기업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서 장애인을 어떻게 고객의 일부로 포함시키는지 생각해 본다.
Apple
이미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는 iPhone을 통해 정보 접근의 혜택을 보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무슨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Apple은 VoiceOver라는 기능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눈에 아이콘이 보이지 않지만 한 번 터치하면 소리로 읽어주고, 빠른 속도로 어떤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나도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글씨가 잘 보이지 않지만 옆에서 아내가 어떤 메뉴가 있는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정보 접근에 큰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이 내 손끝에서 어떤 정보에 접근하는지 읽어주는 것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눈을 선사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검색, 전화, 메시지, 쇼핑 등 다양한 영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이폰에 연결된 세탁기나 건조기도 쉽게 작동할 수 있으니, 누가 옆에서 도움을 주지 않아도 자립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보 접근성 개선과 유니버설한 생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시작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생각하는 마인드에서부터 출발한다. 정부는 매년 시각장애인용 TV를 공급한다. 나도 아버지를 통해 그 TV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데, 기능이라고는 “전원이 켜졌습니다.” “전원이 꺼졌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밖에 없다. 눈이 아무리 안 보여도 TV 소리가 나면 켜진 것이고, 들리지 않으면 꺼진 것이 아닌가? 무언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기능을 넣고 생색내는 듯이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음성 안내 기능은 기본 기능으로 탑재하고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된다. 분명히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든 제품이 아닌, 정상적인 시력과 청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면 더 이상 기술 발전이나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Apple의 모든 디바이스는 이러한 접근성 기능이 ‘손쉬운 사용’이라는 이름으로 기본 탑재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VoiceOver뿐만 아니라 빛 반사가 심한 사람들을 위한 ‘화이트포인트 줄이기’, 얇은 글씨를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볼드체 텍스트’ 기능 등은 시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 배려한 흔적이 넘쳐난다.
Apple은 이제 한발 더 나아가 검은색 바탕을 중심으로 운영체제의 큰 틀을 바꾸었다. 라이트 모드와 다크 모드를 전환할 수 있게 만들어 앱이 두 가지 모드를 동시에 제공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러한 다크 모드의 탑재는 OLED 디스플레이의 특성(OLED는 검은색을 표현할 때 LED 광원을 소등한다)에 따라 전기 소모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능이 나와 같은 저시력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앞으로 노화로 인해 시력이 쇠퇴한 노령 사용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고령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보게 되면서 검은 화면에 대한 수요는 반드시 증가할 것이다. 즉, 누구나 저시력자가 될 수 있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니버설한 마인드와 실천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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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내가 Apple 제품을 주로 사용해서 그렇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Microsoft의 접근성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특히 Windows 시절부터 ‘고대비 테마’를 적용해 왔다. 어릴 적 호기심에 이 테마를 적용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애플리케이션에 고대비가 강제로 적용되어 시인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군들에도 마치 유산처럼 고대비 모드를 반드시 적용하고 있다.
Microsoft는 최고 접근성 책임자(CAO)를 임명해 두었다. 현 CEO인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도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진심을 여러 매체를 통해 공개한 적이 있다. 그의 자녀가 휠체어를 타면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Microsoft 제품군을 사용하면서 기뻐했던 것을 기억하며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기능 향상과 검증을 전문 임원에게 맡기고 있다. 접근성은 거의 모든 제품군에 반영되어 있으며, 우리가 머릿속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임’ 영역까지도 고려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술을 만드는 기업은 단순히 ESG나 사회적 가치 측면의 철학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어떤 사람이 실제로 도움을 받을 것인지를 명확히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Netflix
시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2007년 <트랜스포머>를 보고 나오면서 누가 주인공인지, 빌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액션보다는 정적인 스토리의 영화를 보게 되었고, 자막을 읽기 어렵기 때문에 더빙된 영화나 우리말로 된 영화를 주로 감상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영화관 스크린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최근에는 유튜브 영상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영화는 그저 소리로만 듣는 것을 선호했지만, 대사만 가지고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에는 ‘화면 해설’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면 해설은 영상과 음성 위에 별도의 성우가 녹음한 해설이 입혀져서 영화의 장면을 설명해 주는 기능이다. 처음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액션 장면에서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묘사가 가능했고 인물의 표정과 감정도 자세히 담겨 있어 이해를 도왔다. 나는 어두운 장면을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트랜스포머>처럼 배경은 어둡고 물체만 휙휙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화면 해설은 그 동작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었다. 인물의 이름이 화면에 나오지 않았을 때 해설에서 이름을 알려주거나, 2초 뒤 상황을 미리 설명해 주는 구성은 흐름상 불가피했지만 약간 김이 빠지는 단점도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zIbryCWZ5Y&t=2s
그러나 이 기능은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하다. 화면을 보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어서 또 다른 감상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2024년 가을 발표된 <흑백요리사>의 화면 해설은 시각장애인 개그맨 이동우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틴틴파이브 멤버였던 김경식이 함께 녹음했다. 이제 화면 해설은 접근성을 넘어,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감상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