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야! 빨리일어나!”
나는 어제 국민학교에 입학한다는 사실에 늦게 잠이 들었다. 엄마의 음성은 그 어떤 알람 시계보다도 귀에 명확히 들렸다. 분식집 부엌을 개조한 3평 남짓한 방을 나서면 바로 부엌이 보였다. 커다란 환풍구 아래 무시무시한 크기의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왼쪽으로 싱크대가 있었다. 그리고 기역 자로 생긴 카운터로 연결되고 곧바로 돈통이 보였다. 나는 그 돈통을 열고 닫는 소리에 매우 흥미로웠다. “띵”하고 열리는 소리는 맑고 경쾌했다. 그리고 그 돈통에 들어있는 지폐도 좋았다. 불그스럼한 천 원짜리 누리끼리 오천원, 푸르뎅뎅한 만원까지 그 돈들은 왼쪽부터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움직이지 않도록 검은색 집게가 붙잡고 있었다. 카운터를 지나면 구석에 티비가 놓여져 있었다. 상하로 두 개의 동그라미가 있었고 위에는 채널을 조절했고 아래는 음량을 조절했다. 카운터 앞으로는 쇼트닝이라고 씐 통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내가 여러번 그 통들의 쓰임에 대해 물어봤지만 부모님은 정확히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식당 홀은 좌측과 우측으로 구분되었다. 좌측은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2개 우측은 6인 테이블을 2개씩 붙여서 3줄을 만들어놓았다. 나는 최대 몇 명이 앉을 수 있는지 세어보는 것이 좋았다. 하나, 둘, 셋, 넷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보기도 하고 구구단을 활용하여 하나의 묶음으로 세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왼쪽은 8명.. 오른쪽은 24명 최대 32명은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식당의 바닥은 돌 무늬에 금색으로 무언가 금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그 금만 밟으면서 다니길 좋아했다. 아니 어제 본 성룡 영화에서 혹시 악당들이 우리가족을 위협했을 때 금만 밟고 지나가기만 하면 살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서 금만 밟는 연습을 충분히 해두었다.
벽에는 식당의 메뉴가 붙어 있었다. 왼쪽에는 찌개류 오른쪽에는 식사류라고 쓰있었다.
찌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라고 적혀 있었다. 가격은 모두 2000원이었는데 순두부만 2500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순두부만 비싸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순두부가 원래 비싸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두부를 직접 본 적이 있었는데 내 팔뚝처럼 포장되어 있었고 누르면 풍선처럼 탄성이 있었다.
식사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했다. 돈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내장탕 등등 내가 보기에는 제육볶음과 오징어볶음은 똑같은 양념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맛은 너무 달랐다. 제육볶음을 먹다 보면 오징어볶음을 먹다 보면 제육볶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돈가스 였다. 갈색으로 튀겨진 돈스는 검붉은 돈까스 소스로 덮졌다. 그 옆에 약간의 밥과 가늘게 양배추 그리고 케첩과 마요네즈가 버무려진 샐러드가 나왔다. 맛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우리 식당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돈가스를 매일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엄마는 자주 해주지는 않았다.
이곳은 우리의 식당이자 집이었다. 그러다보니 단점은 따로 씻을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수를 하려면 문 밖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 창고쪽으로 향해야 했다.
그래도 뜨거운 물은 잘 나왔다. 아빠는 우리 두 형를 위해 큰 고무 대를 준비해 주었다. 나중에 그게 김장할 때도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와 동생은 밤마다 김이 펄펄 나는 빨간색 고무대 안으로 들어가 목욕을 즐겼다. 노란색 전구불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항상 세탁기와 탈수기가 돌았다.
그러나 아침에는 그런 호사를 누릴 시간이 없었다. 늦게 일어났으니 최대한 빠르게 씻고 나가야 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문밖을 나와 창고 겸 목욕탕 겸 세탁실로 향했다.
"아 차차"
아직 3월에 쌀쌀한 날씨에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은 가게 바깥으로 나가서 이발소를 돌아 나가면 작은 주차장과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화장실은 쪼그려서 일을 볼 수 있는 구조 였다. 위에 물통이 달려있고 그에 연결된 쇠줄을 당기면 물이 내려왔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추우면 씻다가 오줌을 싸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냄새를 맡은 엄마에게 들켜 혼이 났다.
아빠는 검은색 오토바이를 탔다. 물론 멋으로 탄 것은 아니고 엄마가 조리한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에게 배달하기 위함이다. 오토바이는 내가 보기에 다른 오토바이보다는 세련되어 보였다. 발을 놓는 공간이 넓었고 안정되어 보였다. 넓은 발판에는 철가방을 넣을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걸터 앉아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나의 첫 등교도 오토바이와 함께 했다.
우리집 옆에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 아저씨가 한 명 더 있었다. 정확히 그 아저씨는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꺼와 달리 자전거를 닮아있었다. 그래서 물건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앞이 아닌 뒤에 달려 있었다. 자전거 처럼 사람이 탈 일은 많이 없는지 그곳에는 노란색의 큰 빠께쓰가 달려 있었다. 아저씨의 아들은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이었고 똑같은 학교를 배정 받았다.
아빠와 아저씨는 각자의 아들을 앞에 혹은 빠께쓰에 싣고 달렸다. 나는 아빠가 안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이었지만 아저씨 아들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그런데 아저씨 아들은 8살임에도 불구하고 체구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빠께쓰안에 쏙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꽤 먼거리였다. 우리가 있는 분식집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베르네천‘이라는 냄새가 고약한 개울이 흘렀다. 다리를 지나면 시장 같은 상가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약 4개의 사거리 골목을 지나가면 아주 큰 사거리가 나왔다. 사람들은 그곳을 ’까치울 사거리‘라고 불렀다. 그 사거리 가로 질러 언덕을 넘으면 서울로 향하는 길이 나왔고 좌회전 하면 김포공항, 우회전 하면 부천역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우리 학교는 부천역 방향으로 큰길을 타고 가야 했다. 그리고 경인고속도로가 위로 달리는 굴다리를 지나 다시 큰 사거리를 만난다. 사람들은 그곳ㅇ른 ‘미성주유소 사거리’라 불렀다. 그곳에 이 동네에서 제일 큰 주유소가 있었다. 그 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언덕을 오르면 비로소 학교가 보였다.
“까치울 국민학교”
동네 이름을 딴 학교였다. 이미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입학식을 하기위에 모여 있었다. 이 학교에는 진성이형과 재희 누나가 다녔다. 둘 다 큰 아빠의 자녀들이었다. 누나는 6학년으로 내년에 중학교를 간다고 했고 형은 3학년 이었다. 아빠와 아저씨는 나와 친구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한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천원을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 안으로 밀어넣었다.
내 눈은 유일한 친척인 형과 누나를 찾기 시작했다. 어제 전화를 걸어보니 형은 노란색 잠바를 입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 잘 안들어보고 큰 눈을 굴려 형의 노란 잠바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기 까지도 형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1학년 3반에 배정 받았다. 노란색 빠께쓰에 실려온 친구까지 다른반이 되어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국민학교에 가면 과연 스스로 해야한다고 하더니 모든 것이 새롭지만 두려운 마음이었다.
선생님은 긴 머리지만 꼬불꼬불한 모습이었다. 반갑게 소개를 한 후 우리가 이제 사용하게 될 책을 나누어 주셨다.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