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 최우주입니다.
현재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아주 예전부터 고민하던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유년시절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1990년도에 경기도 부천이라는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부천은 IMF 이전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저희 가족도 서울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다가 꿈을 가지고 분식집을 하나 내면서 생기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담고 싶었던 것은 아주 사실 그대로의 생활모습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기억력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재 눈의 기능이 떨어지면서부터 오히려 기억력이 활성화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6학년 졸업 때까지 1997년 IMF가 오기직전까지 서울의 작은 위성도시에서 벌어지는 경제 호황기의 모습, 그리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네트워크 등을 다뤄보고 싶습니다.
프롤로그
2023년 7월 1일 30년 전 살던 동네에 드디어 지하철이 개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 사람들은 서울과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철도의 수혜를 보지 못한 지역이었다. 인근의 역들은 버스를 타고 최소 20분에서 30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심지어 10여 년 전에 개통된 노선도 이 동네를 지나가지 않았었다.
김포공항에서 깊고 깊은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플랫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이정표에는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개통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저마다 나처럼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나도 뉴스로 개통 일자를 접하고 다음날 멀리 미국으로 출국하는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새로운 전자기기와 같은 전철이 들어왔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나는 한 발을 내디뎌 탑승하였다. 여느 새로 개통한 전철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깊고 깊은 터널 속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의 내가 어느 날 꿈을 꾸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전철을 타는 꿈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의 지명은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이라는 곳이다. 이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토박이보다는 우리 가족처럼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에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한때 이곳이 서울이 될뻔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중심지 언덕에 뜬금없는 백화점이 들어서 있었고 상권도 다른 곳에 비해 매우 활성화되었었다. 그러나 결국 부천시라는 곳에 편입되어 서울도 아닌 그렇다고 많이 낙후되지 않은 애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지하철역이 생기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 정거장을 지나 원종역에 내렸다. 역은 생각보다 매우 컸다. 기사를 찾아보니 KTX가 정차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개통 첫날에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온 것처럼 묘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리고 역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살았던 빌라, 우리 가족의 생게를 책임졌던 분식집, 그리고 학교. 몇몇 상점은 간판이 바뀌고 분위기 달라졌지만 외형은 30년 전과 비슷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때는 동네 중앙에 흐르는 하천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고 하천의 물줄기 끝을 따라가니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학교의 문은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뒤에 증축한 건물을 제외하고 모습은 그대로였다. 이 학교는 지금도 꿈에 자주 나오는 곳이다. 교실과 운동장 놀이시설 그리고 어떤 때는 고등학교 모습과 합쳐져서 뒤죽박죽 묘사되기도 하였다.
말동무 없이 심심해서 꽂은 무선 이어폰에는 곧 상용화가 된다는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에 대해 설명하는 팟캐스트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된 ChatGPT에 대한 이야기도 곧바로 이어졌다. 마음은 30년 전 국민학생이 된 것처럼 걸어 다니며 향수에 젖고 있는데 귀에서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장 내일 아이와 함께 먼 곳으로 가야 하는데 빨리 집으로 와서 여행준비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어느새 40대 가장이 되었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장소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이게 되었다. 한 번도 길게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업무용 메일이 나의 글짓기의 모든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감정과 기억, 장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글로 옮겨 적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과거와 미래는 없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과거는 사진, 영상, 음악, 책, 증언 들에 의해 기억될 뿐이다. 따라서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머리에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단지 나는 그 기억이 오랫동안 보관 될 수 있게 보존해보고 싶었다.
류취신의 SF장편소설 <삼체> 3권에 인류 문명이 어느 알 수 없는 초지능 문명에 의해 끝내 최후를 맞이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때 뤄지라는 인물이 명왕성에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박물관 형태로 보관하고 지키게 된다. 결국 이 글을 담고 있는 아이패드도 사라지고, 텍스트 형태의 글도 클라우드 서버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도 사라진다. 그리고 원시적이지만 화석처럼 돌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만 남을 수도 있고 그마저도 사라질 수도 있다. SF소설의 한 장면을 빌려 극단적으로 과거가 허무하다는 말을 하려기 보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잠재 기억들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고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명왕성까지 없어질 상황이 생기자 뤄지는 인류의 거의 마지막 생존자인 두 여성에게 다빈치의 그림 2점을 우주선에 실려 보낸다.
2023년에 처음으로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2년이 지난 2025년부터였다. 물론 40대 가장으로 살다 보니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은 핑계도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이 프로젝트에 대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6년 기간, 그리고 1년에 사계절을 담고 주제를 담겠다는 아이디어도 수많은 조합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감사하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물과 얽힌 작은 사건, 그리고 국가적으로 일어난 큰 사건도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을 정교하게 엮고 각 인물마다 정말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해 보려고 노력했다.
많은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근거하지만, 기억이 분절되었을 경우 상상력으로 채웠다.
1991년과 1996년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최대 부흥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놀라움을 선사했고 불과 몇 십 년 전 전쟁의 아픔이 가득했던 나라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때마침 일어난 플라자 합의로 인해 경제대국이었던 이웃나라 일본의 버블이 꺼졌다. 그리고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의 수혜를 입는다. 너무나 더웠던 1994년 여름 북핵위기에 라면 박스를 들고 나르던 사람들을 보았고 육해공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도 티비로 지켜봤다. 우리 동네에서 건물이 많이 지어지면서 운영하던 분식집은 함바집으로 변해 나름 풍족함을 누릴 수도 있었다. 처음에 바퀴벌레가 득실 하던 식당 뒤 1평 남짓한 곳에서 잠을 자던 네 식구가 방 2칸, 3칸짜리 발라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91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영업 하는 부모님과 가게에서 함께 생활했다.
급격하게 변하는 대외 환경,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와 사람들의 심리와 의식의 변화를 최대한 자세히 쓰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게 된 초등 교육 시절에 일어났던 것은 나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96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이 소설도 중학교를 가기 전 졸업식이 끝나고 경양식을 먹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마지막 만찬처럼 1997년에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사실 이 이후의 상황은 우리 가족에게도 또 다른 겨울을 선사했고, 다시 정상화되는 데까지 거의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즉, 이 소설은 조금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고, 좋은 이웃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추억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최신 지하철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하고 우리의 삶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누군가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하나의 세계관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