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가을 : 호렙산교회

by 최우주

호렙산교회

곰분식이 있는 까치울 거리에는 교회가 3개 있었다. 통장님이 운영하는 쌀집 위에 하나, 그리고 새우네 철물점 위에 하나, 그리고 서양전기와 멕시칸 통닭 건물 지하에 위치한 나머지 교회였다. 사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건물마다 십자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빨간색 교회 십자가로 빼곡히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있는 1학년 2반에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모두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곰분식 가족은 교회를 다니는 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나는 여러 교회를 다녔었다. 봉천동에 살 때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매주 주일학교에 나갔다. 크리스마스 때는 한아름 선물을 받아오기도 하고 매주 교회에서 맛있는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는 교회를 함께 가기보다는 나를 교회 앞까지 데려다주고 오후쯤 다시 찾으러 왔다. 오전 9시쯤 ‘디즈니 만화동산’이라는 만화 영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날은 교회를 가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교회를 가기 싫어했었다. 디즈니 만화동산에서는 돈을 엄청 밝히는 욕심 많은 오리가 나오는데, 그 오리는 황금색 돈이 넘치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와, 돈이 많으면 수영을 할 수도 있구나!”


엄마는 밤새도록 돈을 세어봤으면 좋겠다고 한 말도 떠올랐다. 돈이 많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장난감을 원없이 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만화에서 묘사되는 오리는 무언가 외로워 보였다. 돈은 많지만 사람들에게 항상 못되게 굴고 나쁜 짓을 하는 듯한 모습에 돈은 적당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홈런볼을 원없이 먹을 수 있는 정도?


호렙산교회는 곰분식과 정확히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 교회 이름이 붙여진 고동색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두 번 돌아 내려가면 신발장과 함께 교회 입구가 나왔다. 지하이기 때문에 꿉꿉한 냄새가 났지만 교회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온 벽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창문이 없는데도 커튼을 달아 놓았다. 한 번은 그 커튼이 없던 적이 있었는데 소리가 너무 울려서 동굴에 온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커튼의 중요한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초콜릿처럼 짙은 갈색으로 칠해진 긴 의자가 8개쯤 놓여 있었다. 그리고 쌩뚱맞게도 한가운데 큰 기둥이 있었다. 그 기둥에 숨으면 목사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이 계신 곳 오른쪽에는 성가대석이 있었고 피아노 한 대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주일학교 출석부가 전지에 그려져 벽에 붙어 있었다. 주일학교를 출석할 때마다 한 칸이 칠해졌다. 당연히 많이 출석한 친구는 나보다 더 높게 칠해졌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의 긴 막대기가 생각났다.


목사님의 식구는 총 5명이라고 했다. 사모님이 계셨고 딸이 3명이나 있었다. 3명의 누나는 모두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고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라고 했다. 사실 누나라고 부르지는 못했고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중 큰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셨고, 둘째 선생님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막내 선생님은 기타를 쳤다. 우리 아이들이 오면 항상 초코파이를 하나씩 주었다. 어떤 날은 오예스를 주기도 했다. 요구르트도 하나씩 빠지지 않았다. 3명의 선생님들은 항상 밝은 얼굴로 대해주었다. 나는 장남이기도 하고 남동생만 있어서 그런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언젠가 아들만 있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나마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일 문방구나 서양전기를 보더라도 딸이 아들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딸들은 크면 전부 교회 누나들처럼 되지는 않지 않을까? 하여튼 남자로 태어난 사람을 맘대로 성별을 바꿔서 생각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기 100원.”


엄마가 교회에 헌금하라고 동전을 주었다. 100원이면 치토스를 하나 사 먹을 수 있는데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교회에는 100원 이상의 음식과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무엇보다 부모님은 주말에 나와 동생이 어디라도 나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는 책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국민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큰 선생님이 까만색 가죽으로 된 성경책과 파란색 찬송가를 선물로 주셨다. 나는 곰분식 방에 들어와서 엄마한테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하나로 모으고 라면을 돌돌 말아 넣고 창세기를 펼쳤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깨알 같은 글씨를 하나씩 읽으면서 옆에 돌돌 말린 라면을 먹으며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고, 갑자기 무서운 내용이 불쑥 튀어나와서 그만 덮어버렸다.


‘성경은 좀 더 어른이 돼서 읽어야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남은 라면을 먹어 치웠다.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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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아빠는 하지 말라는 게 거의 없었다. 사실 나를 돌봐줄 시간이 없다는 것은 가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주문 전화, 그리고 랩에 감싸서 나오는 음식이 담긴 그릇들까지 아빠는 그 그릇을 다시 철가방에 넣고 배달을 나갔다. 다시 들고 온 철가방 안에는 다 먹은 그릇이 있었고 엄마는 다시 설거지를 반복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풀고 라면을 달라고 했다. 그냥 주는 법이 없었고 꼭 한마디씩 하셨다.


“바쁜데 꼭 지금 먹어야 해?”


조금 눈치를 보고서 말한 건데도 나의 배꼽시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래도 한가한 시간이 되면 라면, 김치찌개, 돈가스 등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에게 한 가지 안 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전거’였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 큰 바퀴가 두 개, 뒷바퀴에는 작은 보조 바퀴가 두 개 더 달려 있었다. 따라서 넘어질 수 없는 매우 안전해 보이는 자전거였다. 부모님은 이렇게 안전한 자전거는 빌려서도 타지 말라고 하셨다.


“내 친구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큰일 났거든…”


엄마는 자전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도로에 다니는 차들을 무서워했다. 지난여름 과속방지턱을 만든 이유도 도로를 다니는 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치울 거리에서 베르네천 반대 방향으로 갈수록 언덕이 있어서 자전거의 속도도 빨라졌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쌩쌩 내려오는 형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공사장도 많아서 엄청 큰 트럭들이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럼 나 게임기 사줘.”


엄마, 아빠는 자전거 대신 게임기는 못 사줄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게임기는 비싸고 아이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철물점 아들 새우는 이미 마음 놓고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그 집에 가서 얻어 하는 것도 질렸다.


“그래.”


자전거보다 두 배 더 비싼 게임기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와 동생은 잘 시간도 아닌데 옷장에서 이불을 다 꺼내서 매트를 만들고 그 위에서 열심히 춤을 췄다. 그래, 자전거는 빌려서 타면 되지.


게임기가 생기고 난 후 나는 자전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만 돌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곰분식과 멀리, 그리고 혹시 마주칠지 모르는 아빠의 오토바이를 피해 정말 조용히 자전거를 타보았다.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를 타니 정말 갖고 싶었다. 아빠도 오토바이가 있고 큰아빠도 차가 있는데 나도 그에 맞는 나만의 교통수단을 가지고 싶었다.


그때 사거리에서 마침 달려오는 차와 스쳤고, 나는 무게중심을 못 이기고 넘어지고 말았다. 긴 바지에 구멍이 났고 손바닥에도 붉게 피가 맺혔다.


그날 밤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그냥 넘어졌다고 말했다. 혹시나 자전거를 빌려 탔다가 넘어졌다고 하면 빗자루로 종아리를 맞았을 것이다. 엄마는 상처 난 부분을 소독하고 후시딘을 발라 주었다. 그제야 부모님이 자전거가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사실 차와 스칠 때는 당황해서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잘못하다가는 엄마와 아빠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학교를 갈 때마다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업을 받기 시작할 때쯤 똥이 마려운 것이었다. 최대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곰분식에서 해결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학교 갈 시간은 다가오고 똥은 나오지 않았다. 바지를 다시 추켜입고 학교로 향했다. 그놈은 꼭 1교시 수업을 받을 때 찾아왔다. 쉬는 시간에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애들이 문제였다. 변기 칸에 들어가기만 해도 어떤 애들은 교실로 뛰쳐나갔다.


“야! 우주 똥 싼다!!”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화장실에 들어오는 애들마다 냄새를 맡고 교실로 달려가서 애들을 모아왔다. 그리고 발틈 사이로 휴지를 넣거나 심지어 칸 위로 올라가서 보려는 애들까지 있었다.


‘아, 지들은 똥 안 싸나.’


이게 정말 나쁜 것이 서로 돌아가면서 놀렸기 때문에 애초에 변기 칸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언젠가는 놀렸던 놈도 똑같이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어제 교회에 가지 않았던 것도 후회했다.


‘하나님, 다음 주는 꼭 갈게요.’


이렇게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를 때리는 강도는 갈수록 심해졌고 간격도 더 짧아졌다.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이다.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애들은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똥을 싸러 간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되면 이런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 뭐 하고 안 갔어. 얼른 다녀와.”


나는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교실 뒷문으로 나왔다. 이 날따라 화장실로 가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그 순간 따뜻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복도에서 화장실로 가지 못하고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물컹한 것을 잡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엉엉 울면서 바지 한쪽을 잡고 10분을 걸어 곰분식에 다다랐다.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앞치마를 벗고 뛰어나왔다. 지난번 나만 아는 자전거 사건으로 몸이 다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내 내게 가까이 오면서 냄새로 바지에 똥을 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엄마는 곧바로 창고로 달려가 바지를 벗기고 수습을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똥도 마음대로 쌀 수 없는 학교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놀란 나를 안아 주시고 다독여 주셨다.


다음 날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지만 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학교에 갔다. 생각보다 애들은 어제 일로 나를 놀리지 않았다.


“앞으로 화장실 간다고 놀리는 친구가 있으면 혼냅니다.”


담임선생님은 화장실에 대해 단호하게 이야기하셨고 혹시나 놀리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선생님께 이야기하라고 말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책상이 교탁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똥쟁이라는 소문은 학교보다는 추석 연휴 때 가족에게 더 빨리 퍼졌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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