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 출연자들이 서로 형, 누나라 부르며 팀워크 만들어
비긴 어게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 할리우드 영화도 좋았지만, 버스킹을 하는 같은 이름의 TV 프로그램을 더 좋아한다. 거리가 텅 빈 거리 두기의 시대에 국내에서 시민들을 찾아가 위로한 시즌4도 거의 본방 사수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보는 리얼리티 쇼이다. 소향, 이소라, 박정현 등 가창력이 뛰어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마치 오디션에 참가한 신인처럼 관객들과 교감하는 것도 보기 좋지만, 헨리 같은 외국인까지 출연자들이 서로 형, 오빠, 언니, 누나라고 부르며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이수현과 헨리의 뛰어난 음악성과 풋풋하고 따뜻한 감성을 좋아한다.
1999년 가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그의 가족 기업인 보광그룹 탈세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했다. 이때 대검에 도착한 그를 향해 <중앙일보> 기자 등 <중앙일보> 구성원들이 "홍 사장 힘 내세요"라고 외쳤다. 이 일로 중앙일보 기자들이 구설에 올랐다. 이 광경을 TV로 지켜본 <중앙일보> 출신 한 선배는 홍 사장 말고 사장님 소리도 들렸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선배 기자를 호칭할 때 직함에 ‘님’ 자를 붙이지 않는다. 수습기자도 편집국장을 부를 때 “김 국장”이라고 부른다. “김 국장님”이 아니라. 좋고 싫고를 떠나 언론사의 고유한 호칭 문화이다. 그래서 언론사가 배경인 국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데스크(부장)에게 “박 부장님”, “부장님”이라고 부르면 나는 화악 깬다.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래 전, 오래 알고 지낸 한 여성 CEO와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직업적인 글쟁이는 아니지만 베스트셀러를 쓰신 분이다. 인터뷰한 후 기사가 실렸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는 좋았지만 기사에 실은 자기 사진이 마음에 안 들고, 기사 옆면에 술 광고를 실은 게 거슬린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사진기자로서는 몇 십 컷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랐을 테니 객관적으로는 그 사진이 나쁘다고 할 수 없고, 출고 기자는 옆면에 실리는 광고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이 부장님은 왜 저에게 이 대표님이 아니라 번번이 이 대표라고 하세요? 재벌 회장도 저에게 이 대표님이라고 합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님 자를 안 붙이는 게 언론사 문화라고 해서 외부자인 취재원에게도 님 자를 안 붙이는 건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한 후 앞으로는 이 대표님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님 자를 안 붙이는 것이 도움이 된 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정부 부처 공보관에게 일 처리를 재촉하면서 다소 고압적으로 “이 국장”이라고 하면 더 협조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나 역시 젊은 사무관에게도 꼬박꼬박 님 자를 붙인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아니 기자들도 진화했다.
기자들은 소속사를 불문하고 자기보다 연조가 더 길면 선배라고 부른다. 이때도 님 자는 붙이지 않는다. 한국일보 출신은 기자 선배를 흔히 형이라고 부른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나는 내가 좋아하는 쟁이 선배를 형이라고 부른다. 형이 아니라 그냥 선배라고 부르면 괜찮은 선배다. 현역 시절 선배를 “박 국장”이라고 직함으로 불렀다면 딱히 이런 호감을 느끼지 못한 경우다.
기자들이 상급자에게 님 자를 안 붙이는 건 언론사에 그런 조직문화가 필요했기 때문인 듯싶다. 일할 때 상대의 직급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랄까? 신문이 얄팍해 졌지만 조석간을 발행하던 시절엔 교과서 사이즈로 편집하면 하루 치 신문은 거의 책 한 권 분량이었다. 매일 국내외 뉴스를 망라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면 조직이 일사불란해야 한다. 반면 회사와 상사의 눈치를 보는 자기검열을 하지 않고 발로 뛰는 취재를 하려면 기자는 자유로운 영혼이라야 한다. 그 타협점이 님 자를 생략하는 호칭 문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초년생 시절 어떤 선배는 술잔도 한 손으로 받게 했다.
취미 강좌를 영상으로 서비스하는 플랫폼 기업 클래스101은 대표를 포함해 전 구성원이 서로 닉네임으로 호칭하고 반말을 한다. 대부분 서로 본명도, 나이도 모른다. 반말을 하는 건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장에서 선수들끼리 반말을 하게 한 것과 같은 취지다. 회식 때도, 나중에 합류해 비교적 연배가 높은 임원도 예외가 아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휴학생 출신인 이 회사 고지연 대표는 인터뷰 때 “나이·직급·성별 불문하고 서로 반말을 하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했다.
“인원이 적었던 회사 설립 초기엔 연장자를 형·누나로 부르기도 했는데 위계구조가 생길까 봐 이 가족적 호칭조차 안 쓰기로 했어요.”
비긴 어게인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안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본방 사수하는 리얼리티 쇼다.
나는 1990년 이래 10여 년 간 한국기자협회 간부로 활동했다. 그 말미에 2년 간 기자협회보 편집인을 지냈다. 널리 쓰이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엔 기자사회란 말이 있었다. 말하자면 기자들의 레퍼런스 그룹이다. 기자들은 소속사는 저마다 달랐지만 평소 이 기자사회를 의식해 처신했다. 이 말은 그러나 그 후 사실상 죽은 말이 됐고 기자들도 언론사처럼 각자 도생하는 시대가 됐다.
기레기에 이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진 기자 수난의 시대다. 나는 이런 현실에 대해 편집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 경영권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있다면 언론 기업은 편집권을 둘러싸고 내연하는 갈등이 있다. 아니 있었다. 이 갈등을 오너가 인사권을 휘둘러 누르고 있다. 기자들은 편집국장이 대표하는 기자들에게 지면에 대한 편집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편집간부들이 오너에게 종속된 현실에서 일선기자들이 제대로 된 기사를 쓰기는 어렵다. 한국의 주류 언론이 지나치게 정파적인 것도 언론사주의 강력한 오너십에서 비롯됐다고 나는 본다. 더욱이 모든 미디어가 인터넷판 클릭 수에 목을 매다 보니 기자들이 격무에 시달린다. 연예계는 물론 정관계 인플루언서들의 경우 SNS에 글을 올리면 기자들이 알아서 중계를 한다.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게 아니라 받아쓰고 있다.
30여 년 종이 매체에 종사했지만 나는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를 점칠 능력이 없다. 어쩌면 노답 상황 같다. 그렇다고 종이 매체가 종언을 고할 거 같지는 않다. 미디어의 역사를 보면 올드 미디어는 특화해 살아남았다.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고 외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매일 1시간 50분씩 전파를 탄다. 진행자를 바꿔가며 26년째 장수 중이다.
나는 77학번이다. 79년 여름 공군 사병으로 입대해 35개월 간 복무했다. 군대 가기 전 대학을 다닐 땐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 배지를 달았다. 복학 후엔 배지를 단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입대 전엔 또 여대생이 남자 선배를 흔히 형으로 호칭했다. 일종의 대학 문화였다. 대학사회의 양성 평등 지향이 담긴 호칭 같았다. 이때의 형은 학형의 준 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1990년 말 만난 다섯 살 연하 아내와의 짧은 연애 시절 나는 아내에게 학교 후배는 아니었지만 형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지금도 주로 형이라 부른다. 2년차 직장인인 딸이 태어나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이가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일시적이었지만 난감했다.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 여보라고 부르지 않는다.
‘더쇼머스트고온’은 내가 한국잡지교육원 인터넷 수업카페에서 사용하는 필명이다. 미디어의 미래가 안개 속이고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지만 누군가는 언론이라는 무대에 올라야 한다.
잡지교육원 취재기자 과정도 정부 방침에 따라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오늘 메시지를 주고받은 한 교육원생은 비대면 수업이 잘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지난 5개월여 동안 단 한 주 현장 예배를 드렸는데 담임목사가 자가 격리 중이다. 정말 모범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렸는데, 검진을 받아야 했고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담임목사는 온라인 예배 중 자택에서 촬영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고통의 보편성’에 대해 언급했다. 코로나19의 교훈은 바이러스는 인종도, 종교도, 이념도, 정파도, 계층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구적으로 연대할 때다.
비긴 어게인!
지금은 우리가 다시 시작할 때다.